제17집: 7년노정이 왜 필요한가 1966년 12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2 Search Speeches

7년노정이 끝나면

하나님이 나그네와 같은 처지에서 섭리하신 것은 인간이 나그네의 행로와 같은 처지에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실의 실체를 대신하여 책임을 져야 할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도 복귀섭리에 큰 의의가 됩니다. 하나님의 제일 큰 축복을 받은 다윗의 후손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교단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못하면 제일 끝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이 끝나면 선생님은 가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선생님 가정은 지금까지 어느 기준을 중심삼고 그 울타리 안에서만 돌아다녔지,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들도 자리를 못잡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도 자리를 잡으면 안 됩니다. 자리를 잡고 살면 천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의 생활이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에서 대환란이라는 것을 우리의 40수 노정을 중심하고 볼 때, 하나님의 섭리노정에는 어느 시대나 10고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끝날에 심판을 하기 위해서 7년 대환란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가야 할 노정 중에서 7년을 남겼기 때문에 끝날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7년을 남겨 놓았으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걸 상속받아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결정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했고, 유대교단이 책임을 못 했고, 거기에 속한 족장·사도들이 책임을 못 했고, 세 제자마저 책임을 못 했습니다. 또한 이 땅 위에서 신부인 한 어머니를 모셔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슴에 한이 사무친 것입니다. 원수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한이 아닙니다. 찾아야 할 이스라엘 민족에게 핍박받은 것이 한이요, 사랑하는 세 제자를 비롯한 열두 제자에게 배척받는 것이 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악당의 괴수인 우편 강도가 예수님을 인정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이방인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이 이방민족을 통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강도 한 사람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했느냐? 이스라엘의 모든 죄상과 악을 전부다 뒤집어 씌웠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뒤집어 쓰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그런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3년노정을 출발하여 전도를 나갔을 때, 나가는 곳곳마다 배척을 받았습니다. 배척 안 하던가요? 배척받을 때, 그것은 개개인의 배척이 아니었습니다. 민족 정기가 희미하고, 수많은 교회의 운세가 흔들리게 되어 있고, 우리 또한 가는 길이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배척하고, 교회가 배척하고, 만민이 배척하는 등 전부 배척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려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 사정으로 우리가 찾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에는 성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있고, 성지를 책정하여 그 성지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보다 복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것 생각해 보았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뭇가지와 풀포기를 붙들고 밤을 새워 가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하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던 그 간곡한 심정과,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젖어 들어오는 애절한 마음에 가슴 태우던 그 심정을 누가 알았겠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