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모든 존재물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존재한다 1959년 11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5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일

우리는 마음을 중심삼고 몸까지도 아버지를 부를 수 있어야 됩니다. 이는 내 마음의 아버지요, 몸의 아버지요, 하늘 땅을 대신한 역사적인 아버지가 틀림없구나 하는 입장에서 '아버지'라 부르면서, 6천년 동안 돌고 돌며서 응어리진 원통함과 복받치는 한을 터쳐내는 통곡의 장면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로 오신 예수를 잡아 죽여 놓고 죽으러 오셨다고…? 기독교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아버지가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을 세우기 위해 협조하는 종교입니다. 심부름꾼 종교가 많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으되 기독교는 아버지적 종교요 부모의 종교이기 때문에 사랑을 말했습니다.

아버지로서 사랑을 해야 할텐데 와가지고 대번에 너는 내 아들이요, 딸이라고 하면서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 복귀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그 한은 역사적인 한이요, 시대적인 한입니다. 또 우리가 잘못하면 미래적인 한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무엇부터 해결해야 했느냐. 역사적인 한부터 해결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하늘의 몸을 대신하여 왔지만, 그 마음은 아버지와 하나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마음의 아버지, 무형의 아버지와 하나되기 위해서 싸웠어요. 그렇지만 몸을 쓰고 나타나 이 땅을 주관해야 할 책임을 완결짓지 못하셨으므로 예수님은 지금도 이념을 세우고 세계를 주관하기 위하여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생전 싸워 완결지어야 할 것인데 완결짓지 못함으로 인하여 영계(靈界)에 가서도 2천년 동안이나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끝나는 그때 가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불변의 사랑, 불변의 생명, 불변의 이념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와 안식의 보금자리를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천국입니다. 뭐 재림이 어떻다고들 하지만 목적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 와가지고 '너는 과연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자로구나, 너는 과연 아버지의 이념을 가진 자로구나, 너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진 자로구나, 오, 나의 아들 딸아' 하시며 품고 사랑해 봤습니까? 못해 봤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헤매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오, 주여' 할 때 '너와 나는 아직까지 거리가 남아 있는 것을 모르느냐, 민족에게 다시 권고하여야겠구나'라고 하신 곡절이 어디 있느뇨? 하늘의 실체로서 하늘 대신 품고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늘 주권을 대신할 자요, 하늘의 이념과 하늘의 생명을 대신할 자이지만 그런 자리에는 못 갔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왜? 만물을 주관하라던 권한을 땅 위에서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왔다 갔으되 한을 남기고 갔습니다. 한은 무슨 한? 역사적인 한, 시대적인 한, 미래적인 한을 우리에게 남기고 갔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에 끌려가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다 이루었는 줄 알지만,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죽어서도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죽지 않고는 왜 넘을 수없었던고?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4천년 역사를 가진 유대교와 택해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없이는 미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심정, 시대적인 심정, 미래적인 심정을 해원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넘어야 할 예수의 입장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계에 가서까지도 기도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편안해서 기도해요? 갈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본연의 주권을 회복하고 불변의 사랑과 불변의 생명과 불변의 이념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그 목표를 이루는 한 때를 고대하며 2천년 동안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