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집: 복귀의 전선 1969년 10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9 Search Speeches

가장 정성을 많이 "-야 할 통일교회

세상에 있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가령 남자가 행복을 그릴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필연적으로 공식적인 환경이어야 합니다. 국가면 국가에 있어서 행복을 그리게 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적인 형태는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국가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은 개인이 바라는 행복의 기준보다도 범위가 넓고 크기 때문에 더 복잡할 뿐입니다. 때문에 복잡한 내용을 거쳐 가지고 여러가지 인연이 여기에 부합되고 혼합되어 하나의 목적을 지향시킬 수 있는 국민성을 갖지 않고는 그 나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복귀섭리는 어떤 지역적인 한계권내에서 머물 것이 아닙니다. 지역적인 한계권을 넘어 국가권내로 넘어가야 하고, 국가권내에서 세계권으로 넘어가야 하고, 세계권내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천주, 이 광대하고도 엄청난 범위로까지 넓혀 가지고 이것을 성취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물질적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고,인적 자원도 투입해야 할 것이고, 정신적 자원도 투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귀전선에 있어서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어떠한 개인이면 그 개인, 종족이면 종족이 여기에 정신적인 면과 인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 이 3면을 얼마만큼 투입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 중 어떠한 종족이 그분야를 중심삼고 이 3면을 얼마만큼 투입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거기에는 같은 모양으로 투입했다 하더라도 정성을 두고 볼 때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의 모양이 모두 다르고 심성이 모두 다르니 그들이 들이는 정성의 기준도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10억 가까이 있는데, 그 기독교의 배후를 헤쳐 보게 될 때에 과연 우리 통일교회가 이복귀전선에 있어서 정신적인 면이라든가 물질적인 면이라든가 인적인 면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세계의 어떠한 종교든지 능가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있느냐 하면,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을 보게 되면 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으로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내적인 입장에서는 그러냐? 만일 그렇다 할 수 있는 자신이 없고, 그렇다 할 수 있는 실적이 없다면 복귀섭리의 방향은 아직까지 정상적인 곳을 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갑이면 갑, 더 나아가서는 30억 인류 각자가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양과 처해진 환경은 천태만상이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는 모두 복귀전선에 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이 있고,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이 있고, 또 인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각 국가면 국가가 그 국가 기준에 맞는 어떠한 분야에 임하고 있고 각 민족이면 민족이, 각 개인이면 개인이 그 기준에 의해 나름대로의 분야에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복귀전선이라는 것은 하나의 경주마당이라면 경주마당이요, 생사를 결정하는 담판장이라면 담판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귀의 전선은 우리들이 계획한 그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는 전신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비참한 투쟁을 거쳐 가지고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인 대전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직까지 우리 환경 가운데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