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집: 천국의 거점이 어디냐 1971년 08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5 Search Speeches

성인의 모델형이 갖"어야 할 세 가지 조건

성인이면 성인의 모델형이 있어야 됩니다. 미터 원기(原器) 하나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원형이 있어야 됩니다. 그 원형의 기준이 무엇이냐? 여러분, 좋아하는 옷이 있다 할 때, 그것이 내 마음에만 들면 돼요? 마음에도 들고 그 다음은 몸에도 맞아야 됩니다. 마음에 썩 들어 입어 보았을 때 몸에도 딱 맞으면 기분이 좋지만 몸에 안맞는다면 '에게게' 하며 실망하는 거예요. 그 옷을 입을 수 없는 겁니다. 또, 몸에 맞더라도 그 옷을 입고 걸을 수가 없고, 팔도 맞긴 맞는데 팔을 움직일 수 없고, 활동하기가 불편하다면 그 옷은 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옷은 마음에 맞고, 몸에 맞고, 활동하는 데도 맞고, 3단계에서 다 맞아야 됩니다. 그래야 좋은 것입니다. 목적의 세계는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목적 없이 기쁨이 생겨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몸에 맞고 생활에 맞는 남성을, 성경을 보고 '이 사람이다' 하고 그려 낼 수 있어요? 예수를 지독히 잘 믿는다는 양반들을 불러 놓고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는 말씀이므로 그 성경에서 하나님이 찾는 형의 남자를 찾으라' 하면 그들이 찾을 수 있겠어요? 예수가 그리던 모델형의 사람은 이 사람 이라고 하며 성경에서 찾아낼 수 있겠어요? 문제가 크다는 거라구요.

예수가 왜 죽었어요? 왜 죽었어요? 모델 케이스에 꼭 맞는 사람이 있어서 죽었다고 하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시시한 말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예수가 왜 죽었어요? 원형(原型)에 맞는 사람이 있어서 죽었어요, 없어서 죽었어요? 로마 병정들이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를 죽였겠어 요? 빌라도가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를 죽였겠어요? 제사장이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를 죽였겠어요? 그들의 모형이 예수가 바라는 모형과 같았으면 예수를 죽였겠어요, 같지 않으니까 죽였지요? 같지 않아서 죽였지요?

그럼 예수가 자원해서 죽었어요, 할 수 없어 죽었어요?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보면 예수는 자원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기도를 한 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했습니다. 그걸 따지고 들어가면, 이 땅에 죽기 위해서 왔다면 그런 기도를 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즐겁게 죽기를 결심하고 그 자리에 나서야지. 예수가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기도를 했다면 예수는 구세주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과 뜻이 맞아서 예수님이 죽었다고 생각해요? 맞지 않아서 죽은 거라구요.

어떤 사람이 지방으로 출장을 가서 그곳에서 일을 다 마치고 돌아왔다면 또다시 그곳에 출장을 갈 필요가 있겠어요? 또다시 가야 된다면 그 사람은 태만한 사람이고 회사에서 제거되어야 될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걸 보게 될 때, 예수가 하고 싶어했던 그 생활, 예수가 만나고 싶어했던 그 사람, 예수가 같이 말하면서 계획하여 역사를 새롭게 편성하고 싶었던 그 배후의 전후관계가 어떠했느냐가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못하거늘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불을 던졌지만 불이 안 붙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얼마만큼 맞아야 되느냐? 하나님이 영원한 목적을 중심삼고 영원한 이념을 그려 나가는 분이시라면 영원을 두고 마음이 어떻게 되어야 돼요? 맞아야 돼요, 안 맞아야 돼요?「맞아야 됩니다」 한 십년쯤 맞다가 안 맞으면 안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영원히 마음을 맞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원히 마음을 맞출 수 있고, 영원히 서로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아들이 되려면 슬픔의 대상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천국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나님의 몸에 맞아야 됩니다. 몸은 방향성이 있는 거예요. 방향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생각은 사방의 중심점을 대신하지만 몸은 방향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이 동으로 간다 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아들이 되려면 하나님과 더불어 동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데 예수는 찬 것을 좋아하면 되겠어요? 하나님은 지금 웃고 싶고 말하고 싶은데 예수는 자고 싶다 하면 되겠어요? 외적인 몸을 중심삼고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되느냐? 아니예요, 하나님은 오순도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괄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오순도순할 때는 오순도순해야 합니다. 안팎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만 맞으면 다 되느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없는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몸이 싫어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몸 마음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있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도 그러한 일을 좋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몸 마음을 중심삼고 행동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 행동이 집안에서만 일치되어 가지고 되느냐? 그것은 대사회 대세계에도 나타나야 됩니다. 그 대사회 대세계를 대해 나타나게 될 때에는 세계적인 권위를 갖추어야 되고 세계적인 법례와 위신을 갖추어야 되는데도 불구하 고, 집안에 있는 아들딸은 철부지여서 방안에서만 우리 아빠는 요렇다고 쫄랑쫄랑거리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엄연하게 해야 될 때는 엄연하게 행동해야 되고, 엄숙하게 해야 될 때는 엄숙하게 해야 되고, 권위를 갖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