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신앙자의 자세 1971년 04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1 Search Speeches

먼저 하나님이 수고하셨다" 사실을 알아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생활을 하면서 맹세해야 할 것은 오른편이 하나님편이라면 하나님을 찾아 오른편으로 가야 되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른편 위로 올라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른편으로 가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슬픈 입장에서 기쁜 입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방향을 돌리면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언제나 힘이 소모되는 것입니다. 이 힘을 뒷받침해 주지 않고는 현재의 입장을 견디거나, 혹은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힘의 소모가 가중되고 있습니다. 치열한 힘의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소모되는 힘을 어디에서 보급할 것이냐? 먼저 나 자신이 보급해 줘야 합니다. 나 자신이 보급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에는 현상유지는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힘을 보강해 주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힘을 보강받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공로가 아닙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여러분이 십년 동안 뜻길을 그렇게 갔다 할 때에 그것은 자기의 공로로 말미암아 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수고의 실적을 통해서 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뜻 앞에 남아졌고, 오늘도 뜻 앞에 있어서 내일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에, '역사과정에서 내가 하나님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웠고 너무나 많은 빚을 졌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앙길에서는 가면 갈수록 머리를 들어 자기를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의 심도를 높여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머리 숙일 수 있는 겸손의 도를 높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의 나는 과거를 돌아볼 때에 타락의 후예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현재를 볼 때에 자신이 선한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과거의 선조의 공적은 물론이요, 하나님이 현재 내 생명의 터전을 남기기 위해 무수한 수난의 피의 대가를 치른 결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살고 있다고 합시다. 밥을 먹고 산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산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 여러분은 아무러한 관계나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산다는 이 사실만을 압니다. 몸의 피곤은 하룻밤만 자고 나면 회복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고 있다는 이 사실 배후에는 사망이냐 생명이냐 하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여러분이 살고 있다는 신념을 갖기 전에, 그 신념을 찾고 느낄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의 밑바닥에서는 사망이냐 생명이냐 하는 문제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싸움터를 중심삼고 사망선을 방어하고, 사망선을 뛰어넘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그러한 터전이 없게 될 때는 까딱 잘못하면 사망권의 침범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병이 날 때에는 고통을 받게 되는데, 그 고통은 어디서 오느냐? 그 고통은 사망세계에 순종하는 개체의 비극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일상을 습관적으로 살고 있지만 자기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터전, 그 밑바닥에서 치열한 생사의 투쟁을 하며 사망을 완전히 제압한 자리에 서 가지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시 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세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길을 존속해 가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밑바닥에서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무한한 힘을 소모하는 수고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보상 밑에서 오늘날 여러분이 기쁨을 차지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혹은 선 앞에 섰다는 자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답이 없고, 그런 대가의 치름이 없이는 자기 자신이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오늘날 타락권내에 처해 있는 자신의 뿌리가 그렇게 되어 있으면 뿌리 이상의 자리에서, 혹은 종교가 그렇다면 종교 이상의 자리에 나 자신이 서야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