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집: 좋은 길 1966년 05월 25일, 한국 전주교회 Page #150 Search Speeches

지금까지의 -사가 찾아온 것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아, 저 선생이 오시더니 뭐 처음 온 사람이라고 해서 뭐 어린애 취급해 가지고 저렇게 말씀하시나' 하면서 섭섭하게 생각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여튼 웃고 보니까 십년지기보다 더 가까와졌어요. 그렇지요? 「예」 그렇게 되어 가지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다음에 오지 말라 할 때는 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려요. 알겠어요? 왜, 오지 말라고 했는데 네가 와서 거기 있어? 기분 나빠 죽겠어! 양심은 다 있는 모양이예요. 쓱 이렇게 보니까, 그저 그냥 온 사람은 내 눈이 이렇게 가면…. (흉내 내심. 웃음) 그거 보면 사람이 양심은 다 있구만요. 오늘만은 용서를 해줄께요. 이다음에도 그럴 줄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보라구요. 내가 언제나 이 놀음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이 지구에 찾아오면 이제부터는 교육도 해야 되겠고…. 할 일이 많습니다. 이 공석에 와서 그저 뭐 이렇게 몇 시간 이러다가 내일 이제 대구에 가게 되면 아무 말도 못 해요. 또 그러고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이 일선에 나가 가지고 싸우는데 갖은 사연이 많아요. 눈물 나는 사연, 지친 사연, 이런 것도 듣고 싶고…. 그럴 거 아니요? 그러기 위해서 공적인 입장에서 또 한번 만나 줘야 할 책임감을 느껴서 본부로부터 지구장을 통해서 그렇게 당부해 가지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보면 규율 위반자들이 많아요. 그것이 얼마나 기분 나쁘냐 이거예요. 이왕지사 그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고, 다음 번부터는 안 그럴 거예요, 응? 안 그러겠지요? 「예」 안 그러기로 약속하고 오늘은 다 용서해 주지요. 좋아요? 「예」

그러고, 한 가지 또 부탁하겠어요, 한가지 또 부탁을 해야 되겠어요. 아, 이번에 내가 전북에 오다가 혼났어요. 지금 전북에 왔지만, 전북에 들어서 내가 혼났다구요. 왜 혼났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뭐 선생님이 그렇게 알뜰하게 보고 싶은가요? 진짜 보고 싶어요. 「예」 보고 싶으면 내가 감옥소 들어와 있을 때 전부 와서 실컷 보고 가도록 찾아 주지요? 「몰랐습니다」 누가 모르래요? (웃음) 모른 게 죄지 뭐 아는 내가 죄인가요? 그랬으면 내가 얼마나, 죽어도 못 잊을 터인데. 아, 대전에서 전라도인지 무슨 땅인지, 전북인지 무슨 땅인지 들어서니까 차가 왜 그렇게 지지리 덜거덕거리면서 멎기는 왜 그렇게 자주 멎는지, 급행차가 완행차보다 더하더구만요. 그렇지요, 차가? 「아니, 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예요, 시간이 좀 늦어 가지고 한 십 분간 늦더니 그저 정거장마다 내 집이예요. 이렇게 되니까, 머무는 곳곳마다 통일교회패들이 있거든요. 이건 한 십 분 가다가 멎게 되면 와 가지고 떡 이러고 있으니 내가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있어요?

보라구요. 대전에서 얘기해서 피곤한데, 찻간이 피곤한 걸 풀어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자꾸 와서 이러니, 어떡하라는 말이예요. 그렇찮아도 찻간에 척 올라가면 나와서 전송하는 것을 볼 때, 거기에 탄 사람들이 수상해서 눈을 이렇게 해서 '저거 누굴까?' 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아, 이거 들락날락 내가 어떻게 부끄러워서, 사나이의 담은 가졌지만 부끄러워서 어떻게 어떻게 견디겠어요? 부끄럽겠는가 안 부끄럽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배우인가요? 배우면 다 좋아할는지 몰라도…. 조금 가다가는 앉지도 못 하고 또 나가야 되고, 조금 가다가 또 앉지도 못 하고 또 나가게 되고…. 여러분은 한 번이지만 선생님은 수십 번 고통인데 이거 해먹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녹음이 잠시 끊김)

잘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거예요. 잘될 수 있는 길은 있기는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잘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많지 않아요. 이 우주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어진 모든 피조물 세계 가운데 있어서 혹은 하나님까지 합해 가지고, 그 하나님과 피조물이 합해 가지고 잘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을 거라 이거예요. 잘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면, 잘될 수 있는 입장은 못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좋을 수 있는 길을 찾고 또 가고, 가다가는 또 찾고, 찾다가 또 가고, 조금 낫다고 해서 그걸 붙들고 또 나아가다 또 찾고, 또 가고 또 찾고, 또 가는 거예요. 찾았다고 해서 좋아했지만서도 그것이 잘된 것이 아닌 것을 알 때 나중에는 후회하는 일이 역사노정을 걸어오면서 수수만만이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이 이렇게 가야 좋다. 저렇게 가야 좋다. 요렇게 가야 좋다. 이리로 돌아가야 좋다' 별의별 주장을 한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 주장하는 그 당시에 있어서 그 사람은 이렇게 가야 좋다고 하는 목적에서 움직여 나갔지만 그것이 가다가 보면 자연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될 때는 그는 역사 발전과정에 있어서 제거를 당한다는 겁니다. 좋을 수 있는 인연을 내포한 소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소성을 바탕으로 한 주의나 사상은 역사시대와 더불어 긴 시기를 따라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것도 역시 좋지 않은 것이 드러나게 될 때에는 끝이 온다는 거예요. 이러면서 지금까지…. 그거 어떻게 보게 되면, 수많은 줄을 그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6천 년 동안 어떤 섭리 역사를…. 하나님이 있든가 역사의 흐름이 있어 가지고 흘러 나간다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어떤 역사의 방향이 있으면 그 방향을 따라 가지고 거기에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어떤 주장이나 인생의 행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행로는 6천 년 섭리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방향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인연을 가져 가지고 남아 나올 수 있으되 그 행로가 가다가 끊기는 날에는 제거당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옥닥복닥해 가지고 '야, 이거 안 되겠다. 또 다른 것 찾자' 해 가지고 많은 주의가 나오면, 거기서 서로서로간에 논쟁이 벌어져 수많은 교파들이 싸우고 이래 가지고, 거기서 또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해 가지고, 거기에서 하나의 줄기가 나와 가지고 이만큼 가서는 또 싸우고 또 가다가 또 싸우고…. 이거 그러면서 지금까지 왔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