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불쌍하신 예수와 우리 1971년 04월 30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99 Search Speeches

베레스가 승리하고 태어남으로 말미"아 본 궤도- 오른 하나님의 -사

비로소 바꿔치기를 했는데…. 선이 먼저 출발해야 하는데, 악이 먼저 출발했지요? 이것을 비로소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아담을 지을 때도 하나님이 지었지요? 하나님의 수고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 있어서 사탄이 먼저 출발한 것을 비로소 여기에서 바꿔치기하여 선이 출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아들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아들이 베레스입니다. 야곱의 손자라구요. 3대 만에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3대 만에 주님이 와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에서와 야곱 때를 보면 리브가의 복중에서 서로 싸웠지만 먼저 태어난 에서는 사탄편입니다. 야곱은 태어나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런데 베레스와 세라는 다말의 복중에서 싸워 베레스가 장자의 기업을 바꿔치기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복중은 아들딸이 태어나는 근본인데 그 근본에서부터 바꿔쳤다는 거예요. 태어나서 바꿔친 것이 아니고 복중에서 바꿔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중에서 바꿔쳐서 먼저 태어난 아들에 대해 사탄이 '내 아들이다' 하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중에서 바꿔치지 않고 먼저 태어나게 되면 사탄편이지만 복중에서 바꿔쳐 가지고 먼저 태어나게 되면 하늘편이라는 것입니다. 다말의 복중에서 싸워 가지고 베레스가 세라를 물리치고 태어났기 때문에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랬으니 태어나면서부터 장자예요, 차자예요? 베레스는 필연적으로 차자가 되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장자의 입장으로 태어났으니 선이 먼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혈통으로 교체시켜 놓았습니다. 사탄편 가인과 하늘편 아벨이 혈연을 중심삼고 내려오는 데 있어서 복중에서부터 베레스가 승리하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본궤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혈통을 통해서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예수님이 유다 지파의 혈통을 통해서 오지 않으면 안 되느냐? 유다 지파를 통해서 혈통적 승리의 기반을 태중에서 결정지어 놓은 전환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다말의 공이 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지음받은 입장에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또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면 시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을 보면 해와의 남편입니다. 그렇지요? 3대 남성을 대할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온 것이 해와의 입장입니다. 즉, 딸의 입장이요, 며느리의 입장이요, 아내의 입장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면 며느리는 어떠한 입장이냐? 양녀의 입장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아버지이지만, 아담과의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귀는 거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귀원칙으로 볼 때에 다말이 며느리 자리요 딸의 자리에 있지만, 시아버지의 품에 들어가는 것은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원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해 가지고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것입니다. 베레스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자리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장자의 혈통적 터전이 복중에서부터 출발된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복중에서부터 가인 아벨을 출발시켰기 때문에 다시 복중에서부터 가인 아벨을 탕감시켜 아벨이 가인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때, 형으로 태어나면 동생을 주관할 수 있어요, 없어요? '이놈의 자식아! 너는 내 동생이니까 내 말 들어야 해'라고 강제로라도 굴복시킬 수 있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런 터전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이적기사를 행하실 수 있는 지상 터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하나님이 이 민족을 대해 간섭하고 반대하는 민족은 들이치는 거예요. 왜냐? 장자의 권한을 갖고 태어난 분별된 민족으로서 하늘의 혈통적 터전을 닦아 왔기 때문에 이 민족을 반대하는 민족을 하나님이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 때를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였지요? 그런데 아벨을 죽이고 두려워하고 있는 가인을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가인아, 두려워 말라. 누구든지 너를 죽이려고 하는 자는 벌을 칠배로 받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때는 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다릅니다. 이 권내에서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별된 터전을 통해서 전통적 사상을 가지고 심정적 인연을 계승해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전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