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수난과 생의 보람 1971년 04월 18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76 Search Speeches

하늘의 복을 이 땅- 남기" '심 존재가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수난의 길을 가고, 일생을 바쳐 고생한 사람들을 앞으로 태어나는 자기의 아들딸보다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그 복을 오늘날 우리의 환경, 교단이면 교단, 혹은 가정이면 가정에 인연맺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냐 이거예요. 그 수고의 터전을 자기의 가정과 더불어 자기 생활, 즉 생애노정에 접근시키고 인연맺겠다고 하는 이는 하나님의 복을 추수할 수 있는 역군이 되고, 하늘의 복을 이 땅 위에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앞으로 노력하기보다 과거에 노력하여 선의 실적을 쌓아 놓은 사람을 모시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모시고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살아 계시다면 2천 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33세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천 살이라면 어떠한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까? 만일에 돌아가시지 아니하고 2천년 동안 쭉 살아 나오신 예수님이라면, 여러분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모시고, 하나님의 왕자로 모시고, 자기 생명을 희생하면서도 '감사합니다' 하며 모실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그분을 모실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때요?

예수님은 33세의 청춘시대에 하나님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 예수님은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가는 곳마다 환영받지 못하고 몰리고 쫓기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집어던지는 돌멩이에 맞던 예수였다면, 여러분은 어떡하겠어요? 그 예수도 예수님임에 틀림이 없다면 어떡하겠어요? 영광의 자리에 태어난 예수와 이렇게 시련과정을 거친 예수가 예수님임에 틀림없지만 나타난 결과가 다를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게 좋으면 하고 내게 나쁘면 하지 않는 사람은 역사적인 위업을 상속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사람이 부모가 효도할 수 있게끔 해줘야 효도합니까? 충신이 신하로서 충할 수 있는 길을 군왕이 제시해 줘야 충신이 됩니까?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자리에서 충효라는 명사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전인류를 전부 다 옹호할 수 있는 자리에서 참다운 효와 참다운 충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젊은 예수님을 다 좋아하지만, 만일 예수님이 꼬부라지고 마르고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라면 고심할 것입니다. 손도 오그라들어 가지고 뭘 주더라도 잘 받지 못하고 음식을 먹더라도 질질 흘리는 그런 예수님이었다면 어떠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였다면 따라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사람은 좋을 때 충고를 하는 사람과 좋을 때 축하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다운 사람이 누구겠어요?

오늘날 제일 사랑하는 심정적 인연을 거쳐갈 수 있는 부자의 인연 가운데에서, 자식이 병신일 때에는 그 자식의 병신 모습을 대신하여 그 이상의 고통을 받고 그 이상의 수난을 느끼며 사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2천년 혹은 4천년의 역사적인 시대에 족보의 기원으로 남아질 수 있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 예수님을 영광 가운데에 만민의 추대를 받을 수 있도록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가기가 힘들다고 옆으로 빠지고 뒷걸음질치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종자로 남길 사람이 못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종자로 남기겠어요? 부모는 지금 큰 근심을 품고 나가는데 '아이구, 아버지 어머니는 꼴이 그저 저 꼴이라구. 말하는 것이나 모양이나 별수없어. 여기 있다가는 내 신세 다 망치겠다' 하고 구박하고 타령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종자로 하겠어요? 그런 사람을 중심삼고 만대의 축복을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수난길을 가려거든 아예 아버지 어머니 앞에 가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열 시에 일어나면 아홉 시에 일어나고, 아홉 시에 일어나면 여덟 시에 일어나고, 한 걸음 앞서 가지고 수난길을 개척하고 수난을 먼저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는 데서부터 역사적인 상속이라든가 참다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너는 이러면 나는 저러겠다 하는 대립적인 생각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