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아버님이 같이 계시고 싶은 곳 1959년 11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3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셨던 가정

나를 낳아 준 부모는 나만 사랑할 줄 알지 옆에 있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부부도 자기들끼리만 서로 품고 좋아하지 만민 앞에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그 영광을 돌려 드릴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또 자기 자식만 사랑합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부모를 사랑하되 온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우리 부모를 사랑한다는 관(觀)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부모를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되 하늘 땅에 있는 모든 남성과 여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해야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되 일대(一代)의 인연을 넓혀서 우주적으로,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런 사랑의 관(觀)을 망각해 버렸지만, 예수님은 그런 우주적인 심정을 품고 인류를 사랑해 오셨기 때문에 구주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는 식구를 찾아 나섰을 때, 그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오자 '내 모친과 내 형제는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 모친을 대하여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응당히 그럴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하나의 가정도 이루지 못한 인간들, 하늘의 뜻도 이루지 못한 인간들, 하나님의 자식이 되고 하늘의 백성이 되어야 할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좋아할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인들은 독신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는 가정을 찾지 못했는데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그러기에 높은 기준을 가진 도(道)는 독신 생활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 천륜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한 자체가 하늘 앞에 역사적으로 저끄린 죄상만 해도 용납받을 수 없는데, 그런 내가 하늘이 소망하시는 가정 형태를 이룬다고 하니 하늘은 이를 용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순서가 거꾸로 된 때문입니다.

하늘이 진정으로 그리워하시는 가정을 이루어야 할 사명을 책임지고 오셨던 예수가 그 사명을 완전히 종결지어 가정을 이룬 후에 우리는 그의 아들 딸이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셨던 가정은 어떤 가정일 것인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런 가정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예요. 알아 보니까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하늘 앞에 갈 때는 동서 사방으로 다 갈라집니다. 죽어서 갈 때에 '이 사람은 내 아내인데, 아버지, 데리고 왔습니다' 할 수 있습니까? '저기 우리 아들 딸이 있는데, 제가 천당가면 같이 보내 주십시오' 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당당코 '아버지여, 혈통적인 인연이 있는 이들을 하늘을 대신하여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는 아들 딸, 혹은 남자나 여자를 하늘은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늘 가정을 찾아 헤매시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하신 것입니다. 그를 아무리 편안하고 좋은 곳에 모신다 해도 그곳은 하늘이 그리워하시는 곳과는 천양지차라는 것입니다. 거리에 누워 잠을 잘지라도 거기에 하늘이 함께 하신다면, 예수님에게는 그곳이 보금자리였던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준비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께서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이 같이하실 수 있는 가정을 이루게 될 때 그 가정을 중심삼고 단결하였으면 틀림없이 제사장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늘의 혈족으로서, 하늘의 가정으로서 이 세상을 통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으니 하늘의 혈족이 끊기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께서 최후에 남긴 것은 신랑 신부라는 명사입니다. 신랑 신부, 참부부. 참부부인 동시에 참부모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최초의 아담 해와에게 허락하신 본연의 기준을 4천년만에 다시 세워서 이루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종결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