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집: 근본사상 1990년 01월 12일, 한국 종교회관 (장교빌딩) Page #304 Search Speeches

마음과 몸이 하나되려면 몸을 치" 생활을 해야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그러니까 근본이상을 찾았다면 강력한 신앙심을 가지고, 그 이상을 중심삼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절대적인 자세를 갖춰서 몸을 약화시켜야 됩니다. 몸을 약화시키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행을 하는 것입니다. 고행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스님들? 고행을 좋아하는 몸뚱이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천 사람 만 사람 다 그럴 것입니다. 불교 신자가 몇억 있다면 그 몇억 가운데 고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니할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데서 이상실현을 할 수 있는 논리를 찾을 수 있습니까? 이건 이론적인 모순입니다. 기뻐서 해도 안 될 이 천지인데, 억지로 해 가지고 완성을 이뤄요? 그건 모순입니다.

그러면 종교생활은 왜 몸을 치는 생활이냐? 마음을 중심삼고, 플러스를 대해서 마이너스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마이너스를 만들어야 됩니다. 마이너스만 만들어 놓게 되면 하나되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마이너스로 돌아감으로써 몸과 마음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것도 문제입니다. 이거 근본문제가 왜 그러냐? 지금 세상은 분석적인 논리라야 통하는데 그 논리가 공식과 통계에 연결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거 어려운 말들입니다.

지금까지 과학세계의 발전은 단위를 중심삼은 공식의 발전입니다. 공식을 벗어나서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든 컴퓨터 시스템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 우리가 최고로 편리한 것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인간의 소성, 성질이 본래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면서 그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결과가 손해나는 것은 절대 싫어하는 것입니다.

각 종단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오늘 종협에 문총재가 온다고 하는데 거 어떤 사람인가 가 보자' 하고 오셨을 거예요. `어떤 녀석이야?' 하고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 문선생 좀 보자' 하고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아이구! 우리 기성교회로 보면 마귀 대장인데 가 보자' 하고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별의별 요사스런 행적이 다 여기에 비추고 있을 것이다 이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문제가 큰 것입니다.

몸이 좋아하지 않는 곳을 따라 가지고 내가 도의 세계에 대한 각성을 할 수 있을 것이냐? 또 기독교로 보면 그래 가지고 완성을 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니까 종교는 양심을 중심삼고 몸을 쳐야 됩니다. 종교는 절대적으로 몸을 쳐야 됩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이겁니다. 이걸 몰라서는 안 됩니다. 왜 몸을 쳐야 되느냐?

신이 있다면 왜 몸을 치지 않아도 되게 창조하지 못했느냐? 이렇게 됐기 때문에 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까닭은 모르지만 병난 것은 사실입니다. 스님들, 그렇게 생각하지요? 암만 도를 닦고 뭐 염불을 외우고 하더라도 언제나 고깃덩이의 욕망을 못 버려요. 그것이 살아 있어요. 얼마나 강한지 몰라요.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거 잘 압니다. 정성들이고 도 닦는 데 있어서는 그냥 함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는 길과 그 결과세계의 전진과정이라는 것은 공식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에 몸을 왜 고생시키느냐? 양심기준 앞에 몸을 약화시킴으로 말미암아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걸 약화시켜서 완전히 끌고 다녀 가지고, 한 3년 동안 끌고 다녀 가지고 습관화시켜야 됩니다. 왜? 절대적으로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절대적으로. 딴 생각 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고 형제고 무엇이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뭐고, 나라든 세계든, 잡다한 것 다 버리고 절대적으로 도의 기준 앞에 이 몸을 수양해 가지고 일치, 귀일점을 발견해라 이겁니다. 그건 만교(萬敎)가 다, 어떤 교도 다 그렇게 가르쳐 줘야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교세계에 발전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인격혁명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을 하고 절식을 하고, 그다음엔 고행을 하고, 사회에 나가 가지고 핍박을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 반대받고 그래요. 반대받고 해야 된다구요. 반대하든 말든, 도의 목적 성취를 위해 몸뚱이가 죽겠다고 야단하더라도 아랑곳없이 그걸 다 잊어버리면서 마음 앞에 몸이 순응할 수 있는 자아를 찾기 위한 고된 생활이 종교생활이었더라!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 가짜입니다. 진짜 가짜가 어떻게 갈라지느냐?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 가짜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보편타당한 관을 중심삼고 볼 때, 이런 기준을 두고 볼 때, 양심과 몸을 일치화시키기 위해서는 몸뚱이를 중심삼고 자기가 실행하는 생활에 있어서 경전이 가르쳐 주는 내용 이상까지 수행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불교로 말하면 불교의 참된 신자입니다. 기독교로 보면 기독교의 참된 신자입니다. 여러 종파, 여기 몇 개 종단이 모였나? 「10개 종단입니다」 10개 종단 모두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