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집: 통일교회와 우리의 책임 1963년 10월 22일, 한국 춘천교회 Page #90 Search Speeches

민족복귀를 위한 4년노정

하나님은 맞고 빼앗아 오신다. 하나를 주고 셋을 빼앗아 온다.

예수님은 3년 동안에 하나님, 이스라엘, 유대교, 선열의 한을 풀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계적인 주권을 갖고 오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하나의 주권과 하나의 백성이 세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만약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더라면 그 당시에 로마인들까지 구원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하므로 선의 주권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예수님 생전에 세계만방을 통일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영적으로만 그 형태를 이루어 나오고 있다.

오늘날의 민주진영은 제2 이스라엘 나라와 같고 기독교는 제2 유대교의 입장에 있다. 따라서 미국의 문화적 지배를 받고 있는 한국은 이스라엘과 같고, 미국은 로마와 같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에서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같이 쫓기는 교회(통일교회)가 나와야 한다. 사명을 못 하는 기독교를 밀어제치고 새로운 종교 단체가 나와야 한다.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통일교회는 한국을 중심삼고 사탄과 싸워 이김으로써 예수님의 한을 탕감복귀해야 한다. 우리 통일교회는 지난 3년에 걸쳐 승리의 실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을 풀게 되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지 못했다. 천국은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이루어서 가야 한다. 부모를 모시고 상대기대를 이루어서 아들딸을 품고 가야 한다. 믿음의 3자녀를 택하여 가정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3제자 즉 아담, 노아, 아브라함을 상징하는 3자녀를 찾으려 했으나, 3제자 마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과 성신의 한을 풀기 위해 3자녀를 중심한 36가정을 세움으로써 잃어버린 조상을 찾아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조상을 세움으로 인해, 그 후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담을 중심하고 가인 아벨형(型)을 완결해야 하므로 72가정을 세웠다. 이 가정을 세움으로 인해 사위기대형의 조상 기반을 완성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120문도를 중심하고 낙원에 들어가셨으니, 그와 같이 이 120문도를 지상에도 세워야 한다. 그래서 120쌍 축복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사탄이 끌어 갔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끌어당기는 때이다. 사탄이 빼앗아갈 때 영계의 협조를 받으면 손해보지만, 빼앗아오는 때에 영계에서 도와주면 도와 줄수록 혜택이 큰 것이다.

우리 삼천만 민족은 세계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한민족은 설령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2 이스라엘권내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선조는 제1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영인들이 재림협조할 때가 되었다.

3년노정의 의의는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아 모든 것을 해원성사하고 대이동을 하는 데 있다. 야곱이 하란에서 자녀를 찾은 후에는 가나안으로 대이동을 했고, 모세 때도 애급에서 나왔듯이 통일교회의 축복을 받은 무리는 대이동을 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에서 하지만 나중에는 동반구와 서반구에서 동시에 벌어져야 한다. 이것은 모든 담을 무너뜨리기 위함이다.

3수는 자녀를 찾기 위한 분별 수이며, 4수는 만물을 찾아 세우는 수다. 우리는 이와 같은 1차적인 계획에 성공했다. 이 3년 동안에 승리하여 세계로 진출하는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터 위에 제2 이스라엘을 찾아야 한다.

이제 앞으로 남은 4년은 민족복귀를 위해 활동해야 하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있는 힘을 다해 백성과 국토를 복귀하기 위해 활동해야 승리해야 한다. 선생님이 걸어왔던 40년을 여러분들은 4년 동안에 가는 것이다.

앞으로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떼는 것도 여러분의 손에 달렸다. 통일교회가 아닌 통일 한국을 만들고 그 기반 위에 통일세계를 이루어야 하겠다. 여러분이 책임 못하면 외국인을 시켜서라도 할 것이다. 그들이 이 3년 노정을 걷지 못했고 선생님과 같이 피눈물을 흘리지 못하였다. 선생님과 같은 입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