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하늘편에 서자 1968년 06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5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비참함을 알아야

하나님을 아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그 무리를 통하여 역사상의 서러움을 풀고 싶어하실 것이고, 시대의 사명을 분부하고 싶어하실 것이며, 미래의 책임을 맡기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 식구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선두에 서서 이러한 서러움 가운데 계신 하나님,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계신 하나님, 이러한 억울하고 분한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사실은 어느때에 벌어지느냐? 내가 믿고 바라고 있던 일이 깨어지게 될 때이며, 혹은 나와 그와의 사이에 맺어진 혈연적 관계가 부정될 때입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그때가 가장 비참하고 비통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그렇게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이 배반하게 될 때, 그 믿음에 비례해서 부모가 받는 충격과 고충, 그리고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생명을 걸고 서로 사랑한 사람이 배반하고 배척하며 불신할 때도 역시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몸부림치는 그 고통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말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일을 미루어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되어서 비참하게 되었느냐? 우리는 이것을 놓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닌 구체적인 하나님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과는 최고의 관계를 가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더불어 기쁨으로 출발해서 끝이 없는 영원을 향해 계속 나갈 수 있는 그런 출발의 기점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출발의 기점을 인간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기뻐할 수 있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은, 하나님을 모시는 자리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녀의 입장으로 맺어질 인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모든 인연이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인간은 오늘날 하나님을 비참한 자리에 몰아낸 장본인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슬퍼하시되 나하고는 상관없는 자리에서 슬퍼하시고 수고하시되 제삼자의 입장에서 수고하시는 줄로 알아 왔습니다. 수고와 고통과 모든 슬픔이 인간 때문이고, 그 인간을 대표한 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몰랐습니다. 즉 하나님이 그런 입장에 선 것이 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얼마나 비참하셨고, 오늘날에도 얼마나 비참한신지를 알고, 또한 나를 위해 그런 절망에 부딪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그런 하나님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할진대, 그 사람은 하늘편으로 안 돌아 갈래야 안 돌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을 아는 `나' 그러한 인연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나' 이런 `나'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 시조를 에덴 동산에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어떠한 희롱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지어 만물을 대표하는 중심으로 세우게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