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본을 세워야 할 지상시대 1971년 10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5 Search Speeches

자진해서 죽음의 자리를 찾아가라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그러한 자리에서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죽음의 길을 찾아가라고 하면 갈 사람이 있을 것이냐? 여러분의 일생을 두고 생각해 보라구요. 죽는 사람들을 보라구요. 80이 넘어서 죽고 90이 넘어서 죽지만, 죽는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안 죽는다, 안 죽는다 하다가 죽는 사람이 태반이예요. 안 죽겠다고 하다가 죽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진, 자원해서 그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희망을 가지고 나갈 것이냐 절망을 가지고 나갈 것이냐 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망을 갖고 가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순 중의 모순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왜 이러한 조건을 제시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인간 본래의 인연과 관계된 것을 타파하기 위한 원수의 자리에 서 있느냐? 아니면 친구의 자리에 서 있느냐? 친구의 자리라면 그냥 그대로 환영해야 할 텐데 어찌하여 그걸 거부시키느냐 할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상과 우리가 바라는 욕망권과는 상응적이 되지 못하고 상극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동적인 결론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소망하는 기점, 기조, 혹은 기대, 출발점은 어디냐?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느냐? 이 세상권내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인간의 욕망권이 아니예요. 인간의 욕망과 더불어 그것을 짬뽕시켜 가지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것이 아니예요. 깨끗이 청산한 데서부터 출발하자는 말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 깨끗이 청산지은 데에서부터 출발하자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앞에 제시한 참다운 신앙의 전통적인 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서 본이 되는, 하나의 원칙적 기준을 설정하자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웃고 좋다고 하는 이것이 문제라구요. 눈으로 보는 것, 이게 문제라구요. 귀로 듣는 것, 이것이 문제라구요. 입으로 말하는 그것이 문제라구요. 피부를 통해서 느끼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