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수난과 생의 보람 1971년 04월 18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80 Search Speeches

통일교회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하늘의 수고를 알아야

오늘 통일교회가 가는 도상에서, 미스터 문이 걸어가는 그 도상에서 종말기에 남을 수 있는 형상으로서 어떠한 무리를 요구할 것이냐? 많은 무리가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만민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인 형이라는 것은 '이러한 사람이어야 되겠다' 혹은 그러한 입장에서 책임을 진 '나'라면 '나는 이러한 책임자가 되겠다' 하고 결의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수난길일지라도 시대적 수난을 거쳐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결정적인 터전이 벌어지는 그날, 거기서 새로운 터를 마련하여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고, 하늘의 법도를 따라 발전할 수 있고 천리적이고 순리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모습이 없다면 얼마나 허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비뚤어지고 말라빠지는 과정을 거쳐 거두어들인 씨는 비록 작고 말라 있더라도 그 나무의 본심 본성의 요소를 지닌 순수한 씨인 것입니다. 그 씨가 작고 말라 있지만 봄을 맞이하여 심어지게 될 때는 일대 이대 삼대에 본연의 형태를 중심삼고 자랄 수 있는 본질적인 나무의 형태를 갖출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까지 수난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런 무대를 가지고는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탄세계를 정복하지 못합니다. 책임자들이 향상되어야 됩니다. 책임자들이 철두철미한 사상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전통과 사상이라는 것은 이어받는 것입니다. 부모가 올바르지 못하면 자식도 올바른 자식이 못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려운 길을 싫어하고 더 편안한 길을 가고 싶어합니다. 무슨 단체라든가 하는 것들도 상금을 준다면 많이 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놀음을 계속하게 될 때는 3년, 10년을 거쳐도 누구 하나 남지 않을 것입니다. 상금만 없어질 것입니다. 앞으로 때가 오게 된다면 선생님이 그런 일을 거쳐서 진실을 가려낼 것입니다. 하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의 길에 아직까지 이렇게 수난길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봐요. 자식을 20세까지 키웠는데, 그 자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가 저절로 큰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자식이 자랄 때의 부모의 희생은 얼마나 큰 것입니까? 부모가 20년 동안 안팎으로 생활 전면에서 그 자식을 위해 수고하였고, 또는 가정, 가문 전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가문 전체가 그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혼자 자란 줄 알고 있으니 항상 부모 앞에 불효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식을 바라볼 때 부모는 절망하고, 과거에 자식을 키우느라고 들였던 정성이 그 환경으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요건으로서 그 자체를 공격하고 그 자체를 파탄시키고 싶은 반격적인 마음으로 폭발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복귀섭리의 뜻을 보게 되면 오늘 통일교회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터전 위에서 자란 그 자리는 얼마나 두렵고 엄청난 자리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책임자의 소행이 전통에 침식이 되고 침범될 수 있는 입장이 될 때는 천추에 한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후대 후손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모든 원한까지 거기에 빨려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자리는 지극히 두려운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봄날을 맞이해 보여지는 모든 것을 감상하게 될 때, 나무 중에 '저 나무가 제일 좋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나무의 수고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몇몇 시련을 겪고 극복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모르지만…, 수령이 들고 말라지고 쪼그라지고, 혹은 자기 영역에서 어찌할 수 없는 급변하는 환경에 처하게 될 때에도 여기에 밀어닥친 운명을 뿌리를 깊이 박고 있는 나무는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