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집: 복귀의 전선 1969년 10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3 Search Speeches

예수님보다 " 잘 할 수 있" 사람이 나온다면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어느 때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예비심사를 했느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심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 최고의 정력을 다하는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만은 망하지 않고, 죽지 않고 이것만 넘었으면…' 하고 가슴 졸인 사람이 있었느냐? 그렇다면 그분은 누구였겠는가?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게 했어야 될 것인데, 죽였기에 소망하던 모든 것이 꺾여 나갔던 것입니다. 때문에 몇 천년이 가도 그분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떤 민족의 사람이 그런 재림주가 되어야 할 것이냐?

이것은 세계적인 과제입니다. 과거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그렇잖아요?

만일 한 남자가 세계 제일의 미인을 맞아 가지고 살아 보지 않고는 못죽는다고 천년 만년 버티는 사나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참으로 곤란할 것입니다. 또 여자로 말한다면 세계의 위대한 자를 맞아 가지고 그의 후계자를 낳지 않고는 못 죽는다고 몇 천년을 두고 버티는 여자가 있다면, 역시 하나님은 곤란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해 보았어요? 밤낮으로 수만년 버티게 된다면 하나님이 참 곤란할 것입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소원도 못 들어 주는데, 나라의 소원, 세계의 소원을 어떻게 들어 주시겠습니까?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이 본래 그런 것입니다. 인간에겐 본래 그런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필 수 있는 꽃이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런 종류의 사람보다 하나님의 무한한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 수 있는 남성이 되고,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못 하고서는 민족복귀의 출발을 못 하는 것입니다. 타고 앉아서 태평하게 있으면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예선대회를 하는데 심정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누가 제일이냐? 그런 심정을 대해 가지고 나가는 남자 앞에 대한민국에서 제일인 여자와 코가 비뚤어졌지만 심정이 맞는 여자가 나타났다 할 때, 그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할 때 누구를 택하겠습니까? 코가 비뚤어진 여자를 택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더 좋은 것이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더 좋은 최후에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덜 좋은 것은 정리해 버리고 더 좋은 것이 남아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섭리노정에서 이 대회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걸어 놓고 나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금후의 본선대회에 앞서 있을 예선대회에 예수보다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에게 예수님의 사명을 인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습니까?

맏아들을 낳았을 때는 그 아들만을 몽땅 사랑하지만, 만일 그 맏아들이 죽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난 아들이 얼굴도 비슷하고 무엇으로 보나 맏아들보다 월등한데도 그 죽은 맏아들만을 생각하고 `난 너를 모른다' 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복귀섭리 가운데 있어서 선생님과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누구를 먼저 부르실 것이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안 되었지만 예수님을 먼저 부른다면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하나님 앞에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이 틀렸으면 어디 한번 말해 보세요.

예수님은 큰 일을 해야 하는데, 이적기사니 뭐니 하며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입니다. 무엇을 그렇게 바쁘게 했느냐 말입니다. 작전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의붓 아버지인 요셉 하나를 왜 구슬리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했더라면 밤에도 `아버지 계십니까?' 하고 불렀을 것입니다. `왜 그러노?' 하고 한 번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세 번 대답하도록 만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못 했습니다. 그것을 나는 작전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