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집: 충신과 효자가 되라 1963년 12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9 Search Speeches

지금이 어떠한 때인가를 알았으면 비참한 길을 가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새로운 이념을 붙들고 가는데, 그 길이 어떠한 길이냐? 개인적인 시대가 다 지나갔습니다. 가정적인 시대로, 종족적인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입장에 있더라도 가야 한다 이거예요.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어디까지? 여러분은 안 가더라도…. 만일에 이것이 몇십 년 동안에 되지 않거든 원리적인 대수를 연장시켜서 내적인 방비를 해 놓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때가 어떠한 때인가를 잘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민족적인 길 앞에서 통일교회가 얼마나 비참해요. 얼마나 비참한가 말이예요. 그것은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거예요. 여러분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자기 일신이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비참한 것을 못 느꼈을 거예요.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만큼 자기 인격이 천적인 인격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나는 이러한 사람이요, 이러한 책임을 지고 이러한 역사적인 탕감을 위하여, 시대적인 책임과, 미래적인 책임을 위하여 천주 앞에 사명감을 짊어지고 왔는데 그렇지 못하다'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됩니다. 임자네들이 그런 것을 못 느낀다면 그런 자기의 위치의 사명감, 책임감이 얼마만큼인지 모르기 때문에 못 느끼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지가 않아요.

여러분, 밥을 굶는 자리에서도 무골충이 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어찌하여 밥을 굶느냐? 어찌하여 고생을 하느냐? 원한이 얼마나 있느냐? 그 자리는 원수 앞에 역사적인 한을 남겨 주기 위한 엄숙한 자리라는 거예요. 일대일 입장에 있어서 사탄을 격퇴시키는 엄숙한 자리예요. 사탄 충신과 하늘 충신이 대결하여 '네 절개가 강하냐, 내 절개가 강하냐? 내 절개 앞에 너는 굴복할 것이다' 하는 그러한 놀음이라구요. 일선이 무엇인 줄 알아요? 사탄의 아들딸, 사탄의 부모를 위주로 한 효자 효녀와 하늘 부모를 위주로 한 효자 효녀를 보면 다르다는 거예요. 방향이 전부 다르다구요. 이러한 배경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지금 어느때를 향하여 가느냐? 어느때를 향하여 간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때를 모르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이건 그저 밥을 먹어도 조밥이면 조밥, 보리밥이면 보리밥, 매일 마찬가지 밥을 먹으니까 마찬가지 때인 줄 알지만 때는 지나가고 있다는 거예요. 역사적인 전체의 한으로 내 일대를 걸어서 사탄 앞에 넘겨 주기 위해서는, 일대를 걸어 놓고 사탄세계의 한과 하늘의 한을 대표하여서 전체가 한 자리에 서 있는데 여기서 꺾여 나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인 기반을 닦게 될 때에 개인적인 승리는 결정되는 거예요. 종족적인 기반을 닦게 될 때에 가정적인 승리가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은 민족적인 가정을 접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못 대하는 거예요. 뜻을 따라가려면 가정을 전부 다 버리고 가야 돼요. 어미 아미를 데리고 못 다니게 되어 있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섭리의 뜻을 대하여서, 이 민족을 대해 가지고, 민족 앞에 나설 수 있는 이러한 한때를 얼만 하늘이 추구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뜻 앞에 있게 된 것, 우리의 선조와 마찬가지로 일대의 생애노정에서 천적인 시대와 천적인 때를 대할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복이라면 복이고, 화라면 화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탕감조건 없이 하나님이 이 민족을 찾아올 수 있는 거룩한 때를 우리가 맞이하였으니, 오늘날 민족적인 시련도상에 있어서 민족이 당할 수 있는 환란, 민족이 받을 수 있는 핍박을 우리가 고스란히 받아 가지고 꺾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꺾여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꺾이지 않고 남 아지게 될 때 기필코 이 민족은 굴복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세계적인 하나의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게 될때에 이 민족 앞에 대표적인 운동이 남아져 있고 역사적인 운동이 남아있으면….

만약 책임을 못한 민족이 되었을 때는 그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제사지내는 제사장과 제물이 탕감해 가지고 비로소 다 갚았다는 조건을 세우게 될 때 거기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늘은 민족적인 복을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복을 준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복을 주게될 때에, 그 복을 받고서 세계를 향하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여러분들에게 복을 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지금 때가 그래요.

여러분들을 보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천번 만번 죽어 마땅해요. 그렇다구요. `어느때에 내 개인적인 복귀시대가 지나갔으며, 어느때에 우리 선조 아브라함과 같은, 야곱과 같은 가정복귀시대가 지나갔던가? 난 왜 몰랐던가?' 하며 한스러워해야 된단 말이예요. 어느때에 70가정이 애급을 떠나 국가적인 가나안 땅을 찾을 수 있는 때를 맞이했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때를 맞이한 것이 분하고 원통하다'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같은 시대, 같은 환경, 같은 문제에 있어서 같은 이목구비를 갖춘 하나의 사람으로서 남과 같은 힘을 가져 가지고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나는 그런 때를 갖지 못 하였던고' 하며 한스러워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족복귀시대라는 민족이 대할 수 있는 때가 왔다. 그러면 섭리역사를 볼 때, `개인적인 섭리는 어느 시대에 했던고?'라는 의문을 갖고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정적인 복귀를 위하여 고통받던 시대는 어느 시대였던고? 종족적인 복귀시대는 어느 시대였던고? 어떻게 다 지나 보내고 오늘날 내가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체면과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적인 부끄러움, 시대적인 부끄러움, 하나님을 대한 자녀된 입장에 선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막을 것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돼요. 직접 느껴야 돼요. 모르는 사람은 복일지도 모르지요, 편안하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