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집: 기필코 가야 할 탕감복귀노정 1968년 08월 11일, 한국 마산교회 Page #31 Search Speeches

타락한 인간을 재생시켜 나온 종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지은 것은 기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과 해와를 지은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아담과 해와가 성장하여 서로서로 이성에 대한 것을 알고, 이렇게 나아가서 성숙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불러 가지고 축복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례식을 이루어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목적입니다. 이날을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가지고 비로소 기쁨을 느낄 수 있고, 행복의 출발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여기 맨 뒤에서 세번째, 지금 시작하는데 너는 졸려고 그러나? 내가 이 집회 시간에 조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라구. 저기 저 처녀는 처음 왔나? 처음으로 온 사람들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거라구요. 그렇지만 주─욱 좀 들어 볼 필요가 있는 거라구.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기쁨의 출발을 보지 못하고 슬픔의 출발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복의 출발을 보지 못하고 불행의 출발을 보았다 이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시조기 하나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갈라진 것입니다. 세밀한 얘기는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대개 들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슬픈 불행의 출발을 보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그대로 인류의 조상으로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후손으로 통하는 수천만민은 전부 다 불행에서 출발해 가지고 오늘날 세계사의 만민들은 불행의 와중에서 벗어나지 못한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이 나왔더라면 오늘날의 인류는 참된…. 하나님이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며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인류의 조상으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도 행복을 느끼고 인간을 지은 목적을 달성했을 것입니다. 인간을 지어 가지고 비로소 기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인간 조상을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인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가정의 출발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우리 인류의 진짜 아버지가 된다는 거예요.

아담과 해와가 한몸이 되어 가지고, 여기에서 인류의 조상이 되어 가지고 번식해서 오늘날 인류가 탄생했으면 그 인류는….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지금 둘이예요, 하나예요? 응, 몸과 마음이 들인가요, 하나인가요?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하나되어 있나요, 싸우나요? 「싸우고 있습니다」 싸우는 거예요. 싸움하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성을 다해 지었고 정성을 들여 지었습니다. 정성을 들여 지은 인간이…. 절대자가 인간을 위해 정성을 들여 지었다 이거예요. 절대자는 목적이 둘일 수 언어요. 오직 하나입니다. 목적이 하나이지 둘일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 인간을 정성들여 지었는데, 정성을 들여 지은 인간이 이렇게 둘이 싸우는 사람이 될 수 있나요?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둘이 싸우게 된 것은 무엇이냐?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직 고장이 났기 때문에 미완성품이라구요. 하나님이 목적하던 기쁨의 대상으로서 지은 세계는 미완성품이다 이겁니다. 기쁨의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불행의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장난 물건으로 출발해 가지고, 여기에서 고장난 부모의 기원에서부터 고장난 아들딸로 태어났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고장난 것을 그냥 내버려 둬야 되느냐? 이것을 수리해야 됩니다. 이것을 수리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역사과정에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 종교다 이거예요. 종교란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 세상에서 마음과 몸이 싸우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고 구경하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이예요? 싸우는 것을 보고 구경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입니다」 거 틀림없어요? 나쁜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입니다」 나쁜 사람이라구요. 오늘날 여러분의 몸뚱이와 마음이 싸우나요, 안 싸우나요? 「싸웁니다」 그럼 여러분 자신들이 그 싸움을 말릴 수 있나요? 말릴 수 있나요, 없나요? 「없습니다」 없어요. 그러니까 나쁜 녀석들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역사적인 위인이나 성인이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몸과 마음의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러한 두 경계선에서 뒤넘이치는 인생이기 때문에 '인생이 무엇이냐?' 하고 여기에서 문제삼고 보면 철학이니 뭐니 하는 모든 문제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그런데 철학보다도 한 단계 더 넘어가 가지고 인생을 붙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적인 행동적 분야에서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이냐? 이렇게 싸우는 사람을 다시 한 번 수리하기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