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집: 주목의 주인공 1972년 09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8 Search Speeches

종교의 수치" 하나님의 수치

오늘날 남북이 갈라진 이 모든 운명을 해결지어야 하는데, 남과 북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와 같은 사명과 신경기관과 같은 사명을 해야 할 무리가 종교인이 아니냐. 맨 나중에 세계를 위해서 망하게 된 이 세계를 붙들고 살려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신경기관을 가진 종교가 있느냐? 없다면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비참한 하나님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수난길을 가려 나오면서, 수천년 역사시대를 거듭하며 참고 나오신 하나님이 한 날의 소원성취를 할 수 있는 소원의 상대가, 소원성취의 한 토대가 없고, 바랄 수 있는 한 모습도 없다 하게 될 때, 기가 막힌 수난의 역사를 하나님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 아니냐.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마귀 사탄은 하나님을 대해서 참소할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통해서 당신이 바라던 소원이 이것이요? 참패를 당한 당신의 운명이 바로 타락한 인간을 사랑해 나오던 보응이요?'라고 참소할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은 불쌍하신 하나님이 아니냐.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병신 자식을 가진 그 부모는 어느 한 날이라도 자식을 자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 자기가 위하는 사람,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그것은 치욕이요, 수치가 아니냐. 그 자식을 데려와서 '아무개 이 아이는 훌륭한 내 아들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한다 하더라도, 어머니밖에 모르는 효의 마음을 가진 자식이라 하더라도, 그 부모와 자식 둘 사이에는 통할 수 있지만. 그 위신이 나라의 위신으로 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 위신이 세계의 위신으로 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 위신이 역사의 위신으로 통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부자의 인연은 귀하고 놀랍지만, 그 부자의 관계에서는 통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의 자리에서는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만일 그럴 때가 된다면…. 부모가 눈물지을 수 있는 자리에, 통곡할 수 있는 자리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게 되면, 아무리 병신 자식일지라도 그 자리에 응당히 가 가지고 부모를 위로해 주고 효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지만, 그 부모의 선 자리가 나라를 대표한 자리라면 아무리 효자의 마음을 가진 자식이라 하더라도 나설 수 없는 자리가 아니냐 이거예요. 그럴 때에는 나서지 않고 도리어 문을 닫아 걸고 그 부모를 위하여 눈물로써 기도하고, 그 부모를 위하여 마음으로써 효의 도리를 표시한다면, 그 자식은 그야말로 효자이고, 충신의 행적은 다 갖추지 못했더라도 충신의 반열에 참석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