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참된 사람들 1971년 02월 11일, 한국 마포교회 Page #314 Search Speeches

행복이 웃고 사" 데만 있느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일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 '나는 모르겠다' 하면서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인생은 덧없지만 이런 생활 가운데서 보람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것을 찾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할 때, 여러분은 두말할 것 없이 전부다 후자처럼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게 이상하지요. 그걸 보면 기분 나쁩니다.

자기가 지금 처해 있는 딱한 사정으로 볼 때는 기분 나쁜 거라구요. 당장에 죽을 지경이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될 텐데 거기엔 관심 없는 사람처럼 딴청을 부리니,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그 어떤 것이 그래도 나쁜 것들 가운데서 한 발자국이라도 참에 가까우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는 천태 만상의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로부터 표창받은 사람들 종류를 한번 통계 내 보세요. 국가에서 표창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대개 그들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삼천만 민중이 전부다 '나도 가겠다. 나도 가겠다. 그것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표창받을 대상이 못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부다 표창받게요? 표창이라는 것은 단 한 사람, 일등한 자에게 주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표창받을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국가를 배반하고, 누구나 다 민족을 배반하고 나라고 뭣이고 안중에 둘 수 없는 절망상태의 환경에 떨어졌을 때, 다 도망가고 다 배반하고 다 싫다고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중심적인 지조를 갖고 충신의 도리를 심으려 하고, 애국정신을 심으려고 하는 사람, 거기에서 자기의 몸이 찢기고 어떠한 환난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는 사람에게 표창을 주는 것입니다.

다 도망을 가고 없어졌지만 거기에서 남아 가지고 '나만 남았구만. 내가 일등 상 타겠구만' 하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남아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국가에서 표창을 받겠지' 하는 욕심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붙어 있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상을 타서 뭘해요. 상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붙어 있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가려 내 가지고 여기에 없어지지 않을 하나의 민족정신을 남겨 놓아야 되겠다'고 하면서 자기 생명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고, 자기 생명보다도 더 질긴 인내력을 갖고 사지를 고수한 결과 그 실천한 내용이 대중 앞에서 공인받을 수 있는 실적으로 나타나게 될 때는 자기가 싫다고 도망을 가더라도 수상자로 추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상자로 추대받게 되는 그 동기와 내용들은 비참한 거라구요. 너와 내가 좋아서 희희낙낙하면서 웃고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슬픔과 고통과 고독이 자기를 침범하고 자기 생명을 노리는 위험한 자리에서 그 환경을 극복하고 거기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확립시킨 사람이라면 그는 그 국가를 대표한 충신이면 충신의 이름이 남을 것이고, 국가에서 표창 대상자로 선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생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충신은 평시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충신은 초비상상태에, 국가 운명이 경각에 봉착해 가지고 너나할것없이 전부다 책임을 질 수 없는 환경에서, 역사적인 절박한 내용을 내포한 것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책임지고 나서려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아무리 미래 과거 현실이 악한 세상이라도 그런 사람은 역사적인 대표적 충신으로 남아지는 것이요, 미래세계의 충신들을 통솔할 수 있는 중심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국가에서는 충신들을 중심삼고 제 1의 충신, 제 2의 충신, 제 3의 충신, 제 4의 충신…. 이렇게 순번을 매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표준을 세워서 그보다 나으냐 못하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등급을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행복이 웃고 사는 데만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현생활에 있어서 인간 자체로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곤궁에 사로잡혀 있다 하더라도 그 곤궁을 보람 있게 개척하고 생명을 투입하여 거기에서 남이 지니지 못하는 보람 있는 가치를 갖고 나선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일로써 보다 차원 높게 수습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사상이라든가 모든 주의(主義)는 그러한 기반 위에서 형성되어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보다 나을 수 있는 그 사상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보다 나은 사회환경, 중심 자리에 서 가지고 보다 잘먹고 잘사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사회환경의 복판에 있지만 보다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서 비참한 내용을 소화시킬 수 있고, 비참한 내용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이 깃들어 있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태한 사회를 혁신하고 미래에 있어서 차원 높은 세계로 혁명을 제시할 수 있었던 동기는 보다 나쁜 자리에서 출발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태어난 성현치고 그 나라와 민족 앞에 환영받은 성현이 없습니다. 그런 성현은 가짜 성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