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시대적인 우리의 위치 1971년 10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4 Search Speeches

완숙의 결실을 맺지 못한 기독교문"권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사망의 물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하더라도 둘러싸고 있는 사망의 물결 앞에 밀려간 기독교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타파하고 제압하고, 또 이것이 깨지지 않으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격파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 기독교가 아니었더냐. 그 터전을 이어받은 전통적 인연을 따라서 기독교 문화세계는 창건되어 내려온 것이 아니냐. 그러는 가운데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고 피 흘리며 순교당하는 시련을 많이 겪어 나와 일반인이 보기에는 내려가는 걸음을 걷는 듯하였지만, 그것이 내려가는 걸음이 아니라 내려가는 힘을 통하여 올라갈 수 있는 반대적인 힘이 새로운 생명의 세력을 내포해 가지고 사망의 문화세계를 생명의 문화세계로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는 그러한 과정의 시대시대를 거쳐왔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소생기가 있으면 장성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카톨릭교회를 중심삼은 중세시대가 아니었던가. 자라기는 멋지게 자랐습니다. 세계를 품고 남을 수 있는 권한의 자리까지 무성히 자랐습니다. 거기에 꽃이 피고 결실을 맺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꽃이 피게 될 때 하늘을 중심삼고 피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소망을 중심삼고 남길 수 있는 씨앗을 이어받을 수 있는 영광의 꽃이 생명을 중심삼고 피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사망선을 향하는 인간을 중심삼고 피기 시작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인류역사에 있어서 암흑기라 불리우는 중세 봉건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기고 성숙한 미래의 터전을 가름지을 수 있는 소망의 환경이 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새로운 혁명이 불가피한 세계적인 시대를 접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 수많은 희생의 노정을 가리면서, 수많은 수난길을 가리면서 명맥을 이어받아 현시점까지 와 가지고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은 민주세계권이 창설된 것입니다. 이것이 온대권에 속하는 현대 문명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문명권은 봄절기 문명권으로서 상승할 수 있는 문명권에 서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완전한 성숙을 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을절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크긴 컸지만, 꽃은 핀다고 했지만 이것이 완숙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가을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찬바람이 불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발전노정을 생각해 볼 때, 고대 문명은 열대권 문명, 지금의 문명은 온대권 문명,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은 열대 문명에 속하고 지금의 문명은 온대권인데도 불구하고 이 온대권 문명이 봄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을로 와 가지고…. 그러니까 여기에는 오늘날 공산주의를 중심삼은 한대권 문명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남기고자 하느냐 하면, 문명권에 있어서 씨앗을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대권인 공산권 문명이 휘몰아쳐 가지고 세계 전역이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이 시대권내에 있어서 하나의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새로운 문명의 세계를 지닌 그런 씨앗이 있으냐 없느냐, 이것을 촉구하는 차제에 놓여진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 것이냐? 오늘날의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가을절기에 찬바람이 맞부딪쳐서 접하고 있는 경계선이 드러나고 있는 것과 같은 때입니다. 이것이 부딪쳤다 점점점점 후퇴하면서 둘로 셋으로 분파해 거꾸로 갈라져 가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나왔던 것이 세계까지 나왔다가 부딪쳐 가지고 후퇴할 때에 하나될 수 있는 상대적 관계가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점점 세계에서 국가에서 종족에서 가정에서 개인화될 수 있는 권내로 후퇴할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서 불어났으니 그렇게 떨어져 나가 자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전체주의를 주장하는 공산주의 세계에서도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하는 시대상을 모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상에 올라가 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모습에서부터 불어나기 시작했으니 깨지는 데는 둘로 점점 부서져 나가 떨어져 가지고 개인 위주한 사상적인 결함 속에서 세계는 멸망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세계를 보라구요. 오늘날 세계는 히피족 운운하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세계도 없는 것이요, 국가도 없는 것이요, 사회도 없는 것이요, 가족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도 없는 것이라구요. 자기 자신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냐?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냐? 뭐하는 것이 사람이냐 하는 문제, 삶의 여력까지도 기대하지 않는, 그것까지도 포기한 상태에서 정지냐 발전이냐 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인간상이 우리 목전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