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하늘은 심정으로 모시는 자의 것 1960년 02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6 Search Speeches

예수의 사정과 심정과 한

예수님이 사망의 고비를 넘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던고, 그 힘의 중심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단 하나 심정뿐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심정의 역사를 인계받은 예수는 30여 년의 생애 동안 '한많은 4천년 역사야 가거라,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소망의 한날이여 오라'고 심중으로 심중으로 부르짖으며 살았습니다. 그는 또한 찾아 헤매었습니다. 4천년 동안 심정을 다하여 준비한 신부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스라엘 선민을 택해 세우신 하늘의 슬픔은 무엇이었던가. 교단이 없는 것이 아니요, 바리새교인과 사두개교인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녹음 중단) 불쌍한 예수를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한 신부는 어디 갔는가? 없었습니다. 없었어요. 인류의 역사적인 슬픔은 여기에서 비롯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신부가 없었어요. 땀을 흘려도 그 땀을 닦을 손수건 하나 만들어 줄 신부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고, 입는 옷도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탄세계의 사람들이 지은 옷을 입었으며, 밥을 먹되 사탄세계의 성별되지 않은 부인들이 지어 준 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거처할 곳도 없었어요. 원통한 일입니다. 분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 준비시켰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던고. 메시아, 즉 신랑되시는 예수가 오시게 될 때, 신부로 세우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의 손수건도 한술의 밥도 한 벌의 옷도 한 간의 방도 한 그릇의 물도 모두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 앞에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러한 자리에 한 시간도 있어 보지 못한 채이 땅 위에서 죽어가셨습니다. 서럽다 할진대 이 이상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으며, 통분한 일이 있다 할진대 이 이상 통분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4천년 역사가 저끄러진 기준이 어디에서부터인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예수의 참다운 신부가 없는 데서부터 저끄러진 역사가 벌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한때 이런 기도를 해 봤습니다. '저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실 때에 그 분을 제가 모시고 사탄세계의 어느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걷고 싶습니다' 하는 기도를 했어요. 사탄세계의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것 말고 심정이 어리어서 씨를 뿌리고 거두어서 만든 옷가지, 심정의 준비를 갖추어서 만든 한벌의 옷을 이 땅 위의 어느 누가 해주었습니까? 못해주었어요. 그래 가지고 복받겠어요?

예수가 주라 할진대, 4천년 준비시킨 주라 할진대, 유대나라의 성전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성전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성전은 예수의 것이요, 그 민족 또한 예수의 것이요, 그 백성도 예수의 것입니다. 교회의 무슨 제사장 서기관 할 것 없이 다 예수의 것이예요. 그런데 그들이 예수의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시고 있는 예수의 행로에 이러한 곡절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셨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심정의 상대를 그리워하며 한을 남긴 채 하늘 땅의 인연을 붙들고 죽어가면서도 기도하던 예수의 마음을 누가 알았던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억울한 곡절을 품은 채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부활하였으나 그 곡절을 알아주는 자 없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풀겠어요. 풀래야 풀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대하여 맺혀진 곡절을 인간이 알아주지 못하니 풀래야 풀 수 없었어요. 그런 심정을 갖고 부활하셨기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 앞에 나타나서 '주여 ! '하며 붙들려 할 때에 만지지 말라 하시며 막으셨습니다.

예수가 그렇게 가신 뒤 2천년이 경과한 오늘까지 그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누구이며, 변화산상에서의 그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 참목자와 거짓목자를 무엇으로 판별하겠습니까? 심정이 사무쳐 하늘의 심정을 꿰뚫고, 심정이 사무쳐 천륜의 심정을 꿰뚫을 수 있는 내용을 갖지 않은 자는 참목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분산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가? 심정이 희미해진 연고입니다. 사람이 못나고 시시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잘났든 못났든 유식하고 무식하고를 막론하고 갖추어야 할 바의 심정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주님은 심정의 행로를 걸어가셨고 이제 오실 때에도 심정의 행로를 따라 걸어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