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하늘편에 서자 1968년 06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8 Search Speeches

야곱의 끈기

그 가운데에서 내정적으로 깊이 느낀 것은 무엇이냐?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외삼춘도 믿을 수없고 친척도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연을 끊고, 반대받는 그 환경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하나님을 몽땅 내것으로 품어들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내 소유로, 내 심정의 주인으로, 내 고향의 부모 대신으로, 내 조국의 왕 대신으로 심정의 터전 위에서 모셔 드린 기간이 21년 기간입니다.

그 내정적인 사정을 깊이 안 야곱에게는 외적인 부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외적인 부가 파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내적인 부가 자기에게 쌓여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21년간을 몰리고 배척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혈족임을 존중시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기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것을 사방에 널려 있는 사탄도 공인했기 때문에 야곱에게 축복의 깃발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그 누구도 야곱을 참소할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야곱이 환향할 때, 천사를 야곱에게 보내어 최후의 결정을 지어야 하는, 야곱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 넣어야 했던 하나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이것은 인간 조상이 천사장 누시엘로 말미암아, 즉 영계를 중심으로 제1차 타락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할 때도 영적인 것부터 먼저 해결짓지 않고는 실체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천사를 보내어 야곱과 싸움을 시킨 것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뼈가 이그러지면서도 사력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내가 21년 동안 수고한 것이 이 싸움으로 판결되는구나! 오늘 이 한밤의 싸움에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나의 생의 운명이 좌우되고 이스라엘의 축복의 터전이 좌우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생명을 걸고 씨름을 했던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농담으로 씨름하자고 했겠어요?

천사가 왔을 때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망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느냐? 아니면 복을 주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느냐? 물으니 복을 주기 위해서 왔다는 그 대답에 `복을 주려면 주지 왜 못 주느냐?'고 하니 그것은 책임분담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냥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야곱이 씨름을 해서 이기지 않으면 복을 못 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못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걸고 나섰을 때에 야곱은 오냐, 좋다 `내손가락이 빠지고 내 팔이 빠져도 결코 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칼로 쳐도 놓지 않고 목을 잘라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씨름을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했겠어요? 밤새껏 했습니다. 네가 죽기 전에는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도 입회하고 사탄도 입회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결정을 짓는 그 마당에서 야곱은 얼마나 안타까와했겠습니까? 천사가 환도뼈를 치고 다리를 꺾어 버려도 야곱은 놓지 않았습니다. 네가 죽고 내가 죽고 둘 다 죽는다 해도 못 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했을 것 같애요? 10분? 1시간? 2시간? 7시간 이상 했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야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하나님은 `천사가 지금 사탄을 대표해서 싸우고 있으니 굴복하지 마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으니, 얼마나 초조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채웠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이 지나서 최후의 결단을 짓게 되었을 때에 천사가 아무리 뿌리쳐도 놓지 않으니 거기에서 하나님도 공인하고 사탄도 공인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그런 입장에서 서 가지고서야 천사가 공인해서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천사 앞에 승리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을 때 천상 세계에서는 어찌했느냐? 졸였던 마음을 풀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마음 가운데 쌓였던 슬픔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 하고 부르는 그 음성 속에는 2천년간 쌓인 사연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위해 20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목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인연을 넘어설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때까지 사무친 하나님의 한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거듭 눈물을 흘려도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없는 죄를 짊어진 우리 인간들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빚을 짊어졌기 때문에 천만 개의 제물을 드려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