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수난의 정상에서 1971년 05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63 Search Speeches

전통을 세워 교육할 수 있어야

가정이 사는 데 있어서 절대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왔다갔다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올라가야만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정을 이끌고 올라가기란 더없이 힘이 드는 것을 느낄 겁니다. 개인이 움직일 때는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났지만 가정을 이끌고 올라갈 때에는 이중 삼중의 힘이 드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종족을 끌고 올라가려면 얼마나 더 어렵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어 종족을 끌고 올라가는 데 있어서 그 수난길이 얼마나 어렵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을 끌고 가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들이 종족을 대표해 가지고 전통을 세워 하나님 앞에 전체적으로 움직여 나갈 수 있게 될 때는 민족이 전통의 가정적 중심인 여러분을 본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들 앞에 ‘천륜 앞에 이렇게 가야 한다. 여기에 반항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이렇게 가는 것이 전통적 노정이다' 하는 것을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종족을 모아 놓고 민족을 모아 놓아서 뭘 하느냐는 것입니다. 모아 놓음으로써 오히려 한이 되는 것이요, 거기에 원망과 저주가 깃들게 된다면 차라리 안 모아 놓은 것이 나을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가정을 뒤에 두고 이와 같은 놀음을 하는 것은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가냘프고 연약한 아낙네들이, 주체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여자들이 일편단심 하나님을 위해 감으로 말미암아, 뜻을 품을 수 있는 사나이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자연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여자들이 가는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할 때, 아담의 뒤를 해와가 눈물을 흘리며 갔고, 해와가 가는 길을 아담도 눈물을 흘리며 감으로써 운명의 길을, 공동의 인연을 거쳐 감으로써 타락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 도상에서 눈물을 짓는 여러분의 그 사정을 보고 기뻐하는 남편은 남편이 아닙니다. 부인에게 협조하지 못하면 남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와가 애달프게 눈물을 짓게 되면 남편 되는 아담도 눈물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눈물짓는 자리에 있으면 아들딸도 눈물을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된 아담 해와가 눈물 지었으니 그 후손도 눈물로 살고 눈물과 더불어 신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복귀도상에서도 부모가 눈물 흘리면 그 아들딸도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광의 전통은 누구로부터 세워야 되느냐? 해와로부터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해와가 잘못함으로 인하여 4천년 만에 겨우 찾아왔던 신랑 되시는 예수를 쫓게 되었고, 그 원한이 이스라엘 민족을 망하게 했으며, 세계 인류와 기독교인들을 2천년 동안 수난길로 몰아넣어 억울한 피를 흘리게 했던 것이 아니냐,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앞에 놓고 볼 때, 오늘 해와의 입장인 여러분들은 수난의 최고의 정상을 찾아 나서서 끝까지 극복해야 합니다.

신랑으로 오신 주님이 있다면, 그분이 내 앞에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6천년 수난길을 닦아서 찾아오셨기 때문에 '그분은 이제 쉬게 하고 우리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하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수고로이 찾아온 신랑 앞에 면목 이라도 설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당신도 같이 갑시다. 당신이 앞에 서야 됩니다' 이래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