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집: 혼란과 분열과 통일 1974년 04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9 Search Speeches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아 "러스적일 때 통일적인 형태가 성립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이런 작용을 하다는 사실은,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선생님이 혼자 있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라구요.여러분과 나와의 일치점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요구하는 것과 내가 요구하는 것이 서로 합해 가지고 서로 좋을 수 있는 결과를 다짐짓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여기서 합하면 새로운 목적의 내용에 따라, 새로운 차원의 결합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겁니다.

주체와 대상적인 개념을 찾아들어가게 될 때, 주체와 대상은 왜 작용 하느냐? 서로서로가 마이너스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플러스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하고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와 내가 합함으로 말미암아 현재보다 나을 수 있는 결과를 타진하는 데서 우리 주체와 대상관계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건 전부 다 그렇다구요.

사회적인, 역사적인 모든 발전 현상은 이 원칙에 의해 작용해서 나타난 거예요. 지금 미국이면 미국 같은 나라가, 전세계의 약소국가, 물론 주체적인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취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정책 방향에 있어서, 주체적인 자기 나라와 상대적인 상대의 나라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주고받은 그 결과가 플러스적인, 지금보다 나을 수 있는 데서만이 그러한 하나의 통일적인 형태가 성립된다는 것은 가장 이론적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있는 통일교회 원리라는 것이 막연하고 모호한 그런 기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구요. 여기에 서 있는 사람도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구요. 이론적인 체제에 맞지 않으면 신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렇다면 하나님도 역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호하고 막연한 가운데서 목적관을 모색하는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입장에서 목적관을 제시하는 영원불변의 자체인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적인 세계에 있어서 목적관 확립의 존재의 기원을 밝힘으로써 목적적인 기반 위에 선 확실한 주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처음 온 사람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를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의 필연적인 목적을 추구해야 됩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방향성이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