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하늘은 심정으로 모시는 자의 것 1960년 02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8 Search Speeches

심정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우리

현재 인류의 심정은 6천년 역사의 반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의분을 품고 마음을 앞놓아 통곡하는 생활과정을 거친 자만이 역사적인 심정을 대할 수 있는 동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안 나타나 있지만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불쌍한 이스라엘 민족, 그 중에서도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세계만민까지 불쌍히 여기신 예수였습니다. 하늘은 그런 자를 세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도 원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보다 사탄권내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원수 앞에 맞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을 편들어 애급인을 쳐죽였던 것입니다.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애급을 미워하는 마음보다 앞선 기준에서 쳤기 때문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서 어떤 행동을 한다 할진대 하늘은 그것을 죄로 정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죽였다 해도 심정을 앞세웠다면 그것은 천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참소할 수 없어요.

애급에서 가나안 복지로의 복귀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유리고 객하다가 남아진 무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7족을 다 죽이라 하셨습니다. 소탕하라 하셨어요. 그런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을 막고 반대하는 무리를 들이 쳤으면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심판할 수 있는 자격자는 그러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를 고대하십니다.

끝날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을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끝날에 남아질 수 있는 무리, 심판할 수 있는 무리는 어떤 무리이뇨. 당연히 심정의 주인공입니다.

하늘의 원수요, 6천년 우리의 선조들을 유린해 온 사탄, 그들을 대해 하나님은 얼마나 분하고 얼마나 억울하셨겠습니까? 복받쳐 오르는 사무친 심정을 중심삼고, '용서할 수 없다' 하며 칠 때에 사탄도 '옳소이다' 합니다. 그런 심정을 갖지 못한 자는 공의의 법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몰림의 자리에서도 붙들고 가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정에서 핍박을 받고, 형제에게 몰림을 당하고, 나라에서 쫓김을 받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하나는 심정입니다. 역사가 몰라봤던 심정, 시대가 몰라봤던 심정, 땅이 몰라봤던 심정이 하늘의 심정인 것입니다. 그 심정이 세워 지는 날, 하늘과 세상은 갈라질 것입니다. 그 심정을 붙들고 기뻐하는 날 세상에 슬픔과 고통은 끝날 것입니다. 그 심정을 붙들고 '아버지여 !' '아들아!' 할 수 있는 날, 그 심정을 붙들고 '신랑이여 !' '신부여 !' 할수 있는 그날엔 세상에 천국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영생복락의 세계가 건설된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국이라는 곳은 심정을 통하여 모시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요, 심정을 중심삼은 모심의 생활을 통하여 사탄을 치고 넘어서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