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집: 부모의 마음 1964년 04월 12일, 한국 대구교회 Page #260 Search Speeches

시련을 극복할 수 있-던 노아의 믿음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걷고 있는 길이 탕감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선생님이 걷는 이 길을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도 과거에 하나님의 섭리를 대해 나오는 데에 있어서 그 섭리를 알지 못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선생님이 미래의 섭리를 전개시켜야 할 책임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인도하는 대로 그저 따라오면 됩니다.

아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분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중심의 자리에서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무한히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되 거짓이 아니라 참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러면 참을 주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줄 것이냐? 태평 왕궁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 줄 것이냐?

참의 가치는 평범한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금이 어째서 귀합니까? 그것은 금이 어떠한 작용을 받더라도 변치 않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도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의 조건을 통과해야 참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복귀 도상에 있는 타락한 인간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어느면에서는 사탄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이 세계사는 개인을 연마시켜 세계적인 승리의 발판을 갖추게 함으로써 세계에서 제일 귀한 선물을 주고자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이 세계사의 요구요, 섭리의 요구라 할진대, 역사적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세계사의 문제가 여러분 하나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죽거나 망하는 등의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사탄은 나를 쓰러뜨려 이 자리를 삼켜 버리려 하지만 나는 나대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됩니다. 내 몸뚱이는 쓰러질지언정 내 이념은 일보도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사적인 시험을 받아 십자가상에서 그 육신이 쓰러졌지만 사정과 심정에서는 일보 전진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아의 아들딸의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노아가 무조건 따라오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그렇게 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향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신세가 되었구나. 참으로 적막강산이구나' 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 노아가 슬퍼했다고 하면 거기에는 세계사적인 슬픔이 내포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에게는 생활면으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20년 동안 자기 신세야 어떻게 되건 그것을 개의치 않고 소망의 일념은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 하셨으니 10년간 짓고나서는 10년 소망이 이루어졌구나 했고, 20년, 30년, 100년간 짓고나서는 20년, 30년 100년 소망이 이루어졌구나 했고, 120년간 짓고 나서는 120년 소망이 이루어졌구나 한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가치적인 이념이 있었기에 그 환경을 억누르고 승리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120년 동안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 시대에서 통하지도 않는 탕감복귀노정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아담 가정에서부터 6천년 이상 걸린 복귀의 노정을 가자 할 때 여러분은 거기에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 신세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 6천년 전의 아벨 하나만을 붙들고 끝까지 나왔다면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세워 놓은 중심인물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때마다 다른 인물로 대치시켜 나왔습니다. 그랬으니 오늘날 여러분도 있을 수 있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