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집: 복귀의 전선 1969년 10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8 Search Speeches

죽기를 각오하자

그러니 그것을 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새로운 모습이 생겨나려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실전에 임해 가지고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것입니다. 대학교 나와 가지고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직접 실전에 임해 가지고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것입니다. 필요적절한 환경에 들어가게 되면 귀띔만 해줘도 다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박한 환경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이 어떻고 복귀의 심정이니 무엇이니 말하고 있지만, 그 복귀의 심정이 맛이 납니까? 노처녀에게는 젊은 시절에 시집가서 남편의 사랑받는 맛을 암만 이야기해 주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하고 여러분하고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하는 것과 여러분이 `아버지!'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똑같지만 내용은 천태만상입니다. 이렇게 얘기하자면 한정이 없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를 하는 데도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만 하더라도 그렇고, 수많은 종교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을 떼어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품고 나오고 있으니, 하나님의 심정과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그런 자리에 한 시간도 있지 못 할 것입니다. 십분도 못 가서 전부 다 정신이 돌아 버리고 말것입니다.

기러기도 남아갈 때 하나의 선두가 있어 가지고 질서 있게 날아가지요? 먼 거리를 날수록 대열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할 때에도 맨처음에는 전부 다 한꺼번에 다투어 뛰느라고 복잡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리고 돌아올 때쯤 되면 순서가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한 백오십명이 마라톤을 할 때 순차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지어서 뛰게 됩니까? 그건 명령도 할 수 없거니와 명령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귀섭리는 단기작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장기작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6천년이 짧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나와서 6천년의 역사를 짧은 시일내에 복귀하려고 하니 바쁜 것입니다. 6천년 역사에 비해 통일교회의 역사는 너무 짧습니다. 시련 과정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천년쯤을 대결해야 할 선수들인데 7년쯤 되어 가지고 `이제 조금은 왔겠구만' 하다가는 망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실을 탓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십시오. 만인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일등을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노력하면 천리도 문제없고, 만리도 문제없습니다.

왜정 때, 우리 동네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살았는데, 조금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 형사들이 와 가지고 3.1운동 때 만세 부를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그 일경들이 사람을 잡으러 올 때에는 저녁에 옵니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가 `아 이 사람들이 왜 저녁에 오는 거야. 대낮에 와서 잡지. 나를 잡아라 나를 잡아' 했습니다. 하지만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전부 잡아다가 물어보니, 그 노인이 주동이라고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노인이 주모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주모자로 몰린 그 할아버지가 바로 낮에 와서 나를 잡아가라고 하던그 노인이거든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붙잡혀 와 가지고 `죽어도 만세! 살아도 만세!'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노인을 공판정에 데리고 갔다간 창피만 당하겠으니 그냥 내쫓아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그 노인 참 명이 길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세를 부르려면 그렇게 죽어도 불러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 만세 부르다간 오히려 다 죽는 것입니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으니 하나님 좋을 대로 하십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반을 쌓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