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인내와 극복 1971년 05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3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해 나오신 기준

오늘날 신앙자들 중에는 나 하나 구원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 하나 천국 가고 나 하나 구원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신앙적 관점을 갖고 나간다면 자기 개인 앞에 나타나는 원수들은 극복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개인을 넘어서 가정을 터전으로 하는 악은 누가 극복하겠어요? 그리고 자기 가정만을 위주하고 가정의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노력하는 사람은 가정적인 악의 터전진을 극복할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가정 뒤에 진을 치고 있는 가정보다 더 강하고 더 악랄한 악의 터전은 누가 격파시키겠어요? 종족적인 악의 진영을 타파하고, 민족적인 악의 권한을 극복하고, 국가적인 악의 주권을 제거하고, 세계적인 악의 터전을 어떻게 해방시키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이 바라는 지상 최고의 소망인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이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개인이 이 땅 위에서 머무를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갖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개인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극복권을 마련해야 하고 가정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종족과 친척 전체가 해방권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종족이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민족과 국가가 하늘 앞에 치리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택해 가지고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구요. 한 사람을 이스라엘권에 세워 가지고 하나의 방망이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방망이로 개인을 때려 잡고, 가정을 때려 잡고, 종족을 때려 잡고, 민족을 때려 잡고, 국가를 때려 잡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닦아도 터전을 갖고 있는 악이 순순히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것입니다. 악은 죽기 살기로 결판을 짓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선 앞에 굴복하기 전에는 현재 갖고 있는 환경을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신앙권에 있는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어디서든지 스스로 하늘의 뜻을 대신해서 섰다 할진대는 나 홀로 구원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해방받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승리권을 만들어야 되고, 가정이 해방받기 위해서는 종족의 승리권을 형성해야 하고, 종족이 해방받기 위해서는 민족의 승리권을 형성해야 하고, 민족이 승리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복귀섭리해 나오신 기준입니다.

그러면 한 나라로서, 이 세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특정한 민족으로서 하늘의 행복을 소개해 주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 있느냐? 특정한 민족이 없으면 특정한 종족이라도 있느냐? 그런 종족이 없거들랑 그런 가정이라도 있느냐? 그런 가정이 없다면 그런 개인이라도 있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은 하늘과 화합될수 없는 세상이요, 어차피 심판의 과정을 거쳐서 존재해야 할 세상입니다. 그러한 세상의 끝날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이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선진국가의 문명이 하늘 앞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그 문명이 하늘 앞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 국민이요, 국민사상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과연 그 나라의 국민사상이 하늘의 사상과 일치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되지 않게 될 때는 어떠한 문명권도 하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가는 방향과 일치된 사상을 가진 국가의 국민이 있느냐 할 때 우리 통일교인들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미국도 그러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을 두고 볼 때도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공산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현재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큰 나라, 또는 선진국가권이 이세계가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행복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중심 사명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그 문명국가들이 현대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보다 도리어 실망과 절망의 방향으로 가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문명권에 있는 국가들이 오늘날 이 세계에 하늘이 바라는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터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터전이 되려면 이 세계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됩니다. 세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책임을 지는 민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민족이 있느냐?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그럴 수 있느냐? 만일 미국 자체의 어려움을 세계의 어려움보다 더 생각하는 미국이 될 때는 그런 사명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국가를 세계보다 더 중요시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그런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소련은 더더구나 말 할것이 없습니다. 소련을 위주로 한 세계, 소련 자체를 중심삼고 소련 밑에서 움직이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는 이념. 그런 사상 가지고는 하늘이 바라는 행복의 터전을 성립시킬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