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집: 가야 할 예수의 노정 1971년 10월 3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2 Search Speeches

예수가 대했던 사람"

보라구요.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을 보라구. 고작해야 베드로 같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 보고 사랑을 얘기한 것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어 봤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가 대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과부고 좋지 못한 배후를 가진 사람이라구요. 그 다음에는 누구냐 하면 말이예요, 사마리아 여인, 야곱의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고 하던 그 자리에서 제자들이 의심할 정도로 다정스럽게 이야기했던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누가 또 있어요?

이 땅 위에 사랑의 주인공으로 왔다가, 신랑이니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예요, 그 사랑의 주인공 되시는 분 앞에 상대로 나타났던 무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껄렁껄렁해요, 껄렁껄렁해? 그것이 예수가 바라던 소원이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이었느냐? 아닙니다.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을 요구하는데, 아무리 못난 여자라 하더라도 잘난 남자를 신랑으로 얻으려고 하잖아요? 못난 남자도 잘난 여자를 부인으로 얻으려고 한다구요. 사망권내에 살고 있는 인간들도 그렇게 반대되는 입장을 바라 보는데, 하물며 하늘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예수가 그렇게 지지리 못난 어부들을 모아 가지고 무슨 대장 노릇을 했다는 거예요? 창녀 패거리들이 뭐 사랑한다고 표시했다는 거예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돼 가지고 어쨌다구요? 성경이 그거 아니예요? 기가 막힌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의 대제사장을 중심삼고 '야! 아무개야,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했지? 할 때, '예, 주께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이런 대답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빌라도가 예수의 문도들을 찾아오기 위해서 자기의 시종들을 앞에 세워 통고해 놓고 '이제야 찾아와 뵙게 되었습니다' 했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분 나빴겠어요? 그렇게도 지지리 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게 망하게 하려고 4천년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 했겠어요? 선지자들도 편안한 자리에서 선지자 되는 것 아니예요. 죽임을 당하고 별의별 희생을 다 당하면서도 앞으로 이렇게 된다고 증거한 것이 풍습화 될 수 있는 기반으로 닦기까지 얼마나 천신만고했던고. 그렇게 무가치하게, 그렇게 외롭게 죽게 하기 위해서 그 길을 닦았느냐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불쌍하신 예수님, 불쌍하신 예수예요.

예수가 그 눈으로 바라던 부모는 어떠한 표준의 부모였던고. 하나님 앞에 '내어머니 아버지는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어머니 아버지이오니, 하나님이시여, 이 부모를 나 이상 사랑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축복의 한 시간이 어디 갔던고.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들을 대해서 '하나님이여, 내 사랑하는 형제들은 천상천하의 그 어떤 형제보다도 고귀한 형제이옵니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이와 같은 형제를 가진 것은 하늘의 자랑이요, 인류의 자랑이옵니다' 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디에 있었던고. 혹은 제자들을 대해서 '나는 인간 세상의 스승 가운데 대스승으로서 사제지간을 중심삼고 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제자를 사랑했노라. 사랑하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 있었던고. 자기의 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사돈의 팔촌, 우리의 일족 전체는 하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족이요. 당신 앞에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족이니, 이 일족을 내놓고서는 하늘의 갈 길이 없나이다' 하며 기쁜 자리에서 맹세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소개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바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고.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4천년 동안 수난의 엇갈린 길을 거쳐 나오면서. 악한 무리와 악한 나라의 핍박을 받으면서 남겨 놓았던, 당신이 사랑하고 싶었던 이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섰으니, 이날을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소원성취의 사랑의 날로 맞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었느냐?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막달라 마리아 같은 천비(賤婢)가 와서 발에다 향수를 부어 머리털로 닦을 때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세상 남자 같으면 발길로 차 버렸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그 나라에서 특별한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미녀가 와서 그랬어도 귀찮았을 텐데 그 꼬락서니가 뭐냐? 그렇지만 가롯 유다가 그 행동을 보고 탓하는 자리에서 예수는 도리어 편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롯 유다 너보다 낫다. 너에겐 내 생명을 노리는 간교한 심정이 깃들어 있지만 그 여인은 너보다 낫다. 너보다 나은 사람을 어떻게 탓하느냐?'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전체를 희생하는 길에서만이 복음이 발전한다는 것을 예고하면서 '이 복음인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의 일을 전하라'고까지 다짐하였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이 좋은 자리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일 거기에서 가롯 유다가 그렇게 나오지 않았으면 예수는 어떻게 했을 것이냐? 그런 말을 안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