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시련과 성장 1971년 04월 18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45 Search Speeches

오늘날 통일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

여러분 중에는 부산에 가는 고속도로 위를 달려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길이 지금처럼 달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지기까지에는 천태만상의 수고를 거쳐 가지고 길이 닦여진 것입니다. 그 길을 닦기 위해서 수많은 생명이 제물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후에 국가가 자랑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된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산이 험하다고 해서 꼬불꼬불하게 길을 닦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산이 험하더라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굴을 뚫고 다리를 놓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고 굴을 뚫는 것은 보다 가치 있는 내용을 결정짓기 위한 절대적인 필요 요건입니다. 굴을 뚫기를 싫어하고 다리 놓기를 싫어했다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고속도로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굴을 뚫지 않고 수백리 돌아가는 길을 아무리 잘 닦아 놓았다 하더라도, 좁지만 굴이 뚫려 있는 길이 있으면 사람들은 수백리 돌아가는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굴이 뚫려 있는 빠른 길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를 통해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찾으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요, 우리도 그런 입장에서 매일매일의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돌아가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돌아가지 않고 직행하기 위해서는 직행하기 위한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직행하기 위해 길을 닦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사람들은 모험을 해야 합니다. 모험이 없이는 용사로서, 혹은 영웅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애국자가 못 됩니다. 역사상의 위인이나 성현을 보더라도 모험노정을 회피한 위인이 없으며 성현이 없었습니다. 정면으로 부딪쳐 가지고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성현이나 위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무는 심어져서 뿌리를 박고 난 후에는 아무리 그 땅이 나쁘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질이 흡수할 수 있는 최고의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 자리에서는 크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좋은 땅에 옮겨 심어질 때에는 그 본색을 드러내어 무한히 자랄 수 있는 본성적인 힘과 본성적인 요소가 스며져 있어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곳에 심어지고 싶은 소망은 사랑도 마찬가지이고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통일교회는 어떠한 길을 가야 할 것이냐? 세계 30억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 교인의 수는 지극히 작은 수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뜻이 경부고속도로를 닦는 일과 같다면, 우리는 이제 착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많은 수난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동원되는 데에 있어서 제멋대로 동원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동원된 사람은 목표를 위하여 가는 형편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더라도 그 목표인 부산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여 부산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의 이념에 일치될 수 있는 목적관이 투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관과 자기 현재의 환경이 부딪치게 될 때, 목적관이 깨져 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신의 생활무대가 깨지면 깨졌지, 부딪쳐 오는 시련이 깨지면 깨졌지, 목적관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시작하지 않았던 것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맙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자기 개인으로 갈 때는 자기 몸이라든가 환경이 자기의 것이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시련노정을 거쳐 가야 할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비례하는 수난의 환경이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몰아칠 것입니다. 부딪쳐서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운명길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이 뜻만을 남기고 가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유언이라도 하고 가야 하는 고빗길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