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집: 성탄일을 맞이할 사명 1966년 12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9 Search Speeches

예수가 태어난 비참한 환경을 생각하면 분해

메시아를 복중시대부터 정성을 다하여 모셔 가지고, 그가 태어나는 날이 자기 꿈을 실현되는 거와 같은 소망의 한 날로 기다려야 된다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겠어요? 민족을 만들어 가지고, 야곱이 얍복강에서 승리한 그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이 민족이 원수세계에 몰리면 피해를 입을까봐 보호해 가지고, 사탄세계가 나라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 형태로까지 길러 가지고 그곳에 메시아를 보내셨으니, 그날을 기다리기에 얼마나 지루했겠습니까?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막혔던 가슴속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태어나는 날을 얼마나 기다리셨겠어요? 하나님은 10개월도 지루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복중의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내가 되어서 그가 태어나는 날을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지성을 다하여 바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준비했다가 그가 태어나면 이렇게 키우겠다고, 어렸을 때는 어러한 옷을 입히고 어떻게 키우겠다고, 어떻게 모셔야 되겠다고 마음의 단장을 해 가지고 그날을 고대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면 마리아가 다윗성 베들레헴에 찾아갈 때 혼자 가게 했겠습니까? 그가 가는 주위에는 수많은 군중이 옹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만삭이 되어 가지고 하루하루가 염려스러운 판국인데 그냥 가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주위에는 수많은 군중이 가고, 며칠 전부터 다리를 놓아 가지고 베들레헴에서 제일 좋은 여관을 마련했음에는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을 갖지 못한 마리아와 예수의 환경이었음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환경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그랬더라면 문제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온 모든 사람의 수보다 그를 옹위하고 그가 머무는 환경을 지키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그럴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됐겠느냐는 것입니다.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한 메시아를 동방박사가 맞이하겠어요? 동방박사가 맞겠느냐 말이예요.

이스라엘의 슬픔이 그것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슬픔이 그것이라는 거예요. 어찌하여 이방 사람이 예수를 맞아요? 모인 군중이 동방박사가 증거하는 것과 같은 환경적인 일이 벌어졌다면 사태는 일시에 전국적으로 벌어졌을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이것이 일시에 국가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예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듣기 좋으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예요.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선조들 앞에 책임을 추궁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앞으로 역사시대를 탕감하고 이 시대를 창건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시대를 탕감하려면 역사시대를 심판해야 됩니다. 잘했고 못했고를 심판해야 됩니다. 그런 후에야 시대에 대한 사명과 책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원을 밝혀 놓지 못하고는 시대적인 사명을 할 수가 없어요. 더우기나 그것은 하늘의 역사와 연결되어 내려온 역사이기 때문에 이것을 밝히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문제를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복중으로부터 모셔야 됐어요. 그가 태어날 때 강보에 쌌다고 했어요. 강보, 보자기로 싸다니…. 그 보자기가 어느 누가 만든 보자기예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어느 누가 만든 보자기일꼬?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만들었을까요? 생각해 보라구요. 나그네 신세에 갑자기 벼락을 맞은 거예요. 불의의 사태를 만난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누가 만들었을까요? 혹 거지가 만들지나 않았을까? 얼마든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양간에서 해산하는 형편이니, 그 상황에 어디 손 가까운 데에서 찾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말할 수 없이 비천한 어떤 아낙네의 손을 통해서 만든 보자기인지도 모릅니다. 이게 될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어디 갔어요? 메시아가 처음 입는 옷이 하늘이 생각하지도 않고 하늘이 꿈도 꾸지 않았던 그런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만든 강보라니, 4천 년 동안 하늘이 준비한 이스라엘은 어디 갔느냐 이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손으로 꿰맨 누더기라도 좋아! 이런 걸 생각하면 분하고 원통합니다.

또, 그가 태어나서 목욕을 했다면 어디서 했을까요? 생각을 해 보라구요. 누가 시켰을 것인가?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으니 동네 부인들이 달려왔을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사태가 벌어졌으니, 아기를 낳아 본 부인들은 그 사정을 알기 때문에 협조하는 겁니다. 그 아기 예수를 씻어 주었을 상황을 생각해 보라구요. 어떤 대야, 어떤 그릇에 물을 떠 가지고 와서 씻어 주었을 것인가? 소 여물을 퍼주던 뚝배기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죄짓고 당장 하늘 앞에 형벌을 받을 사람이 쓰던 세수대야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그걸 생각을 해야 된다구요. 이스라엘은 어디 갔는가! 누가 태어난 그를 부축하여 목욕을 시켜 주었을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이, 하늘 앞에 정성을 다하여 그 아기가 탄생하는 그 시간을 맞아 가지고 목욕시킨 조상을 가졌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메시아의 몸을 사탄들이 드나들 그런 손길로써 씻어 주다니 이 불경을 무엇으로 하늘 앞에 사죄하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이나 해봤습니까? 목사들은 그저 거룩하지요.

난 궁금했습니다. 그때 그가 젖을 먹을 때 어디에서 먹기 시작했을까? 24시간은 보통 지내는데 뉘어 놓고 물을 처음 먹일 때 어디에서 먹였을까? 혹시나 외양간은 아니길 바랬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을 먹는데, 처음으로 젖을 먹는데―어떤 것이 외양간인지 다 알지요?―소 오줌 똥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자리에서 먹는 것을 시작하다니,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다니! 생각을 해보라구요. 그런데 뭐 예수가 탄생할 때 말구유에서 탄생해서 강보로 쌌다고, 그 강보를 무슨 하나님의 옷자락같이 생각하고, 그 말구유가 하늘의 보좌라고 생각하는 모양지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서글픔이 어려 있다는 것을 통일교회 패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한 역사적이 한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한을 탕감하기 위하여 시대적, 역사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여 가지고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윗성을 찾아갈 때에 그를 부축해 주는 우리의 조상이 못 되었다는 것이 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가 해산하는 수고와 역경 가운데 있을 때 밤을 새워 가며 시중들지 못한 것을 염려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잠만 자고 꿈에도 그걸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것들은 하늘의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늘이 살아 있다면 벌을 받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