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집: 인생의 갈 길 1971년 01월 08일, 한국 춘천교회 Page #226 Search Speeches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인가

어느 한 동네를 두고 볼 때,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 있어서 `누구는 착한 사람이야. 선한 사람이야. 그래도 저분만은 우리 동네에서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게 될 때, 신임한다고 하는 그 신임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측정하느냐?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가지고 합니다. 틀림없는 것 가지고 합니다. 틀림없다는 것은 시종여일 하다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소원이 좋아지면 더 좋아졌지 나빠지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사람은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은 무엇이냐? 변하지 않고 틀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물이라 할 때 색깔이나 질에 있어서 변하는 것은 보물이 될 수 없습니다. 색깔이나 질이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시종여일해야 됩니다. 십년 후에도 백년 후에도 천년 만년 후에도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변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양심입니다. 그런데 이 양심이 절대적으로 선하냐 하면, 양심도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양심은 악을 싫어합니다. 싫어할 뿐만 아니라 악이 나타날 때에는 `이놈'하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제재를 가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악을 대해서는 투쟁하려고 합니다. 이 작용에 있어서는 여러분의 양심이 변하지 않는 본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에 동생의 먹을 것이라든가 입을 것을 자기 것으로 하려고 하면 양심은 `야 이놈아, 그건 동생 것이 아니냐. 동생에게 물어 보고 해야지' 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양심은 원리원칙에 어긋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언제나 제재하는 작용을 합니다. 이 작용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두운 밤에 혼자 있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이 악한 입장에 설 때는 양심은 그것은 좋지 않다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이 작용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다음 또 한 가지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몇천년 전 사람이나 몇천년 후 사람이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마찬가지입니다. 못난 사람이 못난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잘난 사람과 비교해 가지고 차이 있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못나고 비참한 자리일수록 긍휼의 마음, 불쌍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마음은 천년 전 사람이나 천년 후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앞으로 인간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런 사랑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