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집: 기필코 가야 하겠습니다 1972년 11월 12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09 Search Speeches

고독하고 비참한 길을 걸어 온 섭리사의 '심인물"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타락하였습니다. 하늘을 저버려서 하늘의 탄식권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이미 설파했습니다. 모든 만물이 탄식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계에 있는 성신 이하 모든 영인들도 탄식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이 탄식하면 이 세계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도 역시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탄식의 역사를 이어받은 후손들은 어느 한날 탄식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길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번번이 실패의 역사를 거듭해 왔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수습하기 위한 가인 아벨 역사에서, 하나님은 또다시 2차적인 실패를 보았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참상을 당했습니다. 타락으로 피를 보지는 않았지만, 타락한 결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에서 피를 보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의 역사를 물어 가지고 서로서로 화해를 해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화해하지도 못했고 하늘과 더불어 하나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인류를, 전세계를 노아를 중심삼고 쳐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물로 전체가 사라지도록 쓸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최고의 정성을 들여 창조한 인간일 것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과 축복의 대상으로 만물을 지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하나님이 채찍을 들어 심판했다는 말이 남아졌다는 것은, 탄식 중에서도 피가 맺힌 비참의 역사가 거기에 가해진 것임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러한 비참의 역사를 수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해 가지고 유랑의 생활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정든 땅, 고향 산천을 뒤에 두고 행객의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안 될 비참한 운명길을 가르는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가는 길은 비참한 길이었습니다.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집시의 대열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방에서 나그네 신세를 모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의 간교한 계교에 의하여 자기의 아내를 빼앗기고 자기 일족이 고립되는 상태에까지 몰려 들어갔습니다.

하늘이 가는 길이 비참한 길이었기 때문에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비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길도 비참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는 길도 비참하였습니다. 바로 궁중 40년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편이 되어 나섰던 모세는 궁중에서 쫓겨났고,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자기의 몸을 나타낼 수 없는 운명에 처해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먹고 사는 데 있어서 비참한 생활환경에 몰렸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뜻을 대해 나왔던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 특히 비참한 목자인 다윗을 택해 가지고 이스라엘을 지도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웠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는 고독한 한 사람의 목자였습니다. 그 누구와 친구될 수 있는 자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고독한 자리에 섰고 외로운 자리에서 하늘을 흠모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탄식을 염려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는 하나님의 염려를 덜어 드리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깊은 심정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당당한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무시하고 나설 때, 이스라엘 군상들이 전멸될 입장에 섰을 때, 다윗은 양치는 목동의 옷을 입고 물매와 돌을 갖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가 주인으로 삼았던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의 주관을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주권자 대신 주인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자기의 선조 누구보다도 하늘을 믿고 나섰던 것입니다. 하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의 자리에 직면하더라도 하늘이 지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선 다윗은, 가는 길은 고독하였지만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비참하였지만 비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탄식을 해소시킬 수 있고, 이들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믿고 나서는 다윗 앞에 하늘은 같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리 당당한 골리앗도 다윗 앞에서 하나의 초개와 같이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렇듯 비참한 역사적 사연들을 가려 가지고 나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참한 자리에서는 하나님은 지켜 주셨고, 지친 사람들이 또다시 희생하는 것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