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하늘을 위로하자 1968년 04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0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한을 '어 "릴 승리의 아"이 다시 와야

여기에 대한 분통과 한을 품고 원수를 갚는 책임을 짊어질 하나의 사람, 하나의 무리,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가 필요합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아들이 와서 하나님의 위로의 주체가 되는 동시에 이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아들과 딸이 타락했기 때문에 아들과 딸이 위로의 대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을 신랑되신 주님이라고 하며 그 신랑 앞에 신부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대상으로서의 여성 실체를 찾기 위해 허덕이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고 갔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예수님의 이 기도에는 4천년 역사의 한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 길을 가고 나면 금후의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피의 제단을 넘어가야 한다는 사정을 알기 때문에 기가 막힌 사연을 품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 미욱장이 베드로, 야고보, 그들이 사도는 무슨 사도입니까? 베드로와 여러분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하기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도 보고 가만히 있었고, 도망 다녔던 그들보다 여러분은 더하지. 그래도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부활한 후 회개했기 때문에 다시 사도의 이름을 준 것입니다. 즉 거꾸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꾸로 죽었어요. 여러분 기분 나쁘죠? 그러한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배신하였던 그들이 할 수 없이 결속하여 세운 종교를 믿어요? 선생님은 그들에게 항의합니다. 그들을 만나서 공격을 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에게 아무리 복을 빌고 행복의 터전을 갈구하며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이 찾고 있던 심정적인 위로의 대상이 찾아지지 않으면 그 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루어지게 되면 오히려 그것은 화가 됩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은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들 중에 영광된 나라로서 들림받을 수 있었는데, 오히려 화가 됐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축복을 받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잃어버린 하나님 앞에, 즉 하나님은 이 땅 위의 남성을 대표한 위로의 주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주체를 대신할 수 있는 심정의 대상이 이 땅 위에 다시 나와야 합니다. 아담은 순순히 하나님 품 안에 안길 수 있었지만 고통과 슬픔을 안겨드릴 장본인이기에 그는 다시 와서 하나님께서 과거에 상처받은 역사적인 모든 서글픔을 위로해 드리고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한을 하나님의 마음에서 빼드려야 됩니다. 그 다음에 승리한 아들로서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리까지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 아들의 입장으로 예수님이 올 때까지 하나님은 수천만 번 왕래하면서 그 길을 닦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아들을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4천년 동안 소원하던, 만민을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면서 예수님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골고다를 향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좋았겠습니까? 기가 막히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기 위해서 왔다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4천년 동안이나 준비를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은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이 책임을 못했던 탓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예수님이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었다고요? 죽은 예수님이 만민을 구원한다면 죽지 않은 예수님은 만민을 못 구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