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집: 7년노정이 왜 필요한가 1966년 12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3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을 해원 성사하자

여러분들이 이 민족을 책임지고, 세계의 운명을 책임지고,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아버지! 이 민족을 살려 주시옵소서. 새로운 제3이스라엘 민족인 한국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배반하고 핍박하는 것은 2천년 전의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했던 그런 심각한 자리와, '할 수만 있다면 이 민족을 살려 주시옵소서'라고 애원했던 예수님의 최후의 애절한 호소가 하나님 앞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렇게 호소한 것은 누구 때문이었습니까? 민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나 하나 살기 위한 것보다도 민족을 위하여 '아버지여! 할수만 있다면 이 민족을 사해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가야할 십자가의 길을 피할 수 있게, 여러분들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붙들고 통곡을 하면서 제사장적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심정으로 하늘 앞에 '나를 내보내소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7년노정 중 6년이 끝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느 정도까지 충성을 해야 하느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몰아내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산정으로 올라갈 때,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생사의 교차로에서 죽음을 맞아 나설 때, 예수님 앞에 나아가 '내가 그 죽음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하며 나설 수 있는 결의를 지금 여러분들이 가져야만, 실체를 쓴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 시켰다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민족적인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는 곳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런 곳으로 가봐라! 하나님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을 그런 입장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쓰러지려는 찰나에 '아버지여! 한을 푸시옵소서. 이것을 제가 극복하겠습니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그러한 호소는 못하고 자탄하며 자기의 입장만 생각하고 미래의 갈 길을 염려하면서 몸부림치는,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한을 남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명령한 선생님이 잘못했느냐? 물론 명령을 한 선생님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잘못이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 노정에서 가다가 지쳐서 자기 개인의 내일을 꿈꾸고 염려하는 그런 무리가 되어,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주저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칼에 쳐버릴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이냐? '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