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집: 민족복귀의 역군이 되라 1963년 10월 16일, 한국 대구교회 Page #33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은 예수가 책임을 다하여 그 한을 땅에서 풀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또 다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2천년 탕감복귀연장시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했던 하나님이었으니 그 발걸음이 편했겠습니까?

우리의 선조들은 어찌하여 사탄의 수중에서 희생되었던고? 하나님은 마음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해 6천년 동안 탕감해 나왔지만 아직까지 완전탕감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했기에 다시 재림이란 명사를 세워 완전 탕감의 한 날을 바라며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은 아담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하나님의 슬픔과 십자가상의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던 하나님의 슬픔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고, 만민 앞에 제단을 쌓고 죄인같이 붉은 옷을 입고 하늘 앞에 속죄의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자식도 처량하지만 그런 길로 내몰아야만 하는 아버지의 심정도 처량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과 따르는 여러분의 입장이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어느 정도까지는 알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가야 할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국에 남아 있는 골고다의 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길을 넘어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가야 하고, 세계적이 골고다의 길을 넘어 천주적이 골고다의 길을 향해 행군해야 할 여러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크나큰 책임이 맡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지탱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지 않으면 갈 곳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신세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모든 개인 사정을 천번 아니, 만번이라도 봐주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할 적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들어주고 싶었겠습니까? 자식이 기도하기 전에 들어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지만 아버지는 외면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운명하기 직전에 한에 사무친 목소리로 크게 소리질러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슬픈 인생을 살아왔고, 제아무리 자기의 생명이 유린당하는 환난도상에서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이었다면 인류를 몰살시키고 뼈까지 전부 불사르고 그 재마저 날려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이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곡절의 심정을 억누르고 지금까지 인간을 대해 오셨습니다.

인간들은 천차만별의 행로를 거쳐 왔지만 하나님은 복귀의 한 날을 바라보시며 개인적인 시대를 거치고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를 거쳐 수고의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인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오신 아버지 앞에 진짜 아들딸입니까? 선생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눈물짓고, 겟세마네 동산과 감람산을 찾아가던 예수의 심정을 더듬어 그의 슬픈 심정을 알고 나서는, 이렇게 불쌍한 주님을 위로해 드리지 못한 자신이 한스러웠습니다. 그 당시에 그 분을 모시고 내가 한번 살아 봤으면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영광의 그 세계를 꿈꾸며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고, 그 아담 해와가 어서 자라기를 바라셨던 것처럼, 아버지의 미의 대상실체가 되어서 천지가 우러러보고, 만우주가 찬양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그 사랑의 품에 안기어 사랑받을 수 있고, 그 아버지의 사랑의 품이 좋아서 눈물지을 수 있는 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