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집: 참된 축하 1964년 01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1 Search Speeches

사탄과의 싸움-서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 한계

개성완성, 그다음에 상대완성, 그다음에 세계완성…. 사탄이 3시대험을 할 때에 돌을 갖고 시험하고,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험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개체완성을 하면 반드시 상대이상을 완성해야 돼요. 신부를 택해야 돼요. 신부성을 복귀해야 된다 이겁니다. 신부성을 복귀하여 그다음에 자녀를 세워 가지고 그 자녀를 전개시켜 나라를 만들고, 나라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복귀해야 돼요. 내용은 간단해요. 이것이 예수께서 싸워 원수들과, 이겼어야 할 내용이예요.

오늘날 우리들은 반대로 `나는 이러한 존재이고 너는 이러한 존재가 아니냐? 예수가 너를 이끌어다가 시험을 하고, 너를 끌고 다니면서 명령을 해야 할 입장이 아니냐? 그런데 내가 너한테 시험을 받아?' 라고 하면서 반대로…. 이 분한 것을 반대로 돌려줘야돼요. 사탄 앞에 시험받게끔 내놓여겼던 우리 선조들의 분함을 우리들은 탕감복귀해야 돼요. 원수 사탄이 예수를 시험할 수 있는 아무런 천적인 자격이 없어요. 그는 본래 이러한 자였고 근본이 이러이러한 모든 인류 앞에 전부가 원수적인 입장에서 우리 선조를 유린했고, 역사적인 전통을 유린했고, 혈통을 유린한 존재예요. 그런자가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시험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당당하게 항의를 해 가지고 답변이 없게 되면 제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책임자로 부터….

그러나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왔다가 슬픔을 남겨 놓고 갔기 때문에 다시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면서 수많은 선조들이 2천 년 동안 수고하면서 죽음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십자가 도상에 내놓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3년 공생애노정에 있어서 종의 몸으로서 양자, 혹은 직계 자녀의 자리에까지 나가기 위해서 찾았던 모든 것을 전부 다 다시 인류에게 나누어 주게 됐어요. 그러나 이것을 영적인 기준에서만 닦고 갔으니 지상세계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 거예요. 어떠한 조건, 종의 권한을 갖더라도, 종의 입장에 있는 존재가 희생을 당하더라도 영적인 기준이니, 육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그 고통을 받고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간섭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죽고 난 후에나 간섭하지. 구원이 영적만인 겁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고통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사탄이가 '따라와라' `따라와라' '따라와라' 할 때 `따라가마. 네가 가는 데는 어디든지 가겠다'라고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는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죽어 나가자빠지는 그 이상의 고통의 자리에 가서야 비로소 하늘로부터 간섭을 받는 거예요. 이것이 복귀예요.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이렇게 구원섭리해 나온 거예요.

우리 인간들이 하늘편과 사탄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왜? 영적 구원만 세웠기 때문에. 그렇지만 하늘은 사탄에게 '백 번 죽고 천 번 죽더라도 하늘을 따라 나를 믿는 자녀들을, 믿는 신자들을 내가 자랑하고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해라. 그렇지만 이런 고난의 자리에 들어가도 나를 믿고 나를 배반하지 않으니 이 고난의 자리까지 들어와서 같이 맞을래?'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이요, 시대가 흐르면 그에 따라 핍박의 범위가 점점 커 간다는 겁니다. 핍박도 많아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가 가면 갈수록 기독교 역사는 세계사적인 비참한 역사로 종결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위가 점점 큰 죽음의 고개를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휩쓰는 죽음의 세계가 오더라도 그 세계를 무난히 돌파할 수 있고, `천 번 만 번 죽더라도 나는 간다' 하게 될때, 세계를 지배하는 그 세계적인 이념권 내를 향하여 믿고 나가는 그 신앙 자, 그런 자리에 무난히 열번 백 번 죽더라도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에게서 사탄이 떠난다는 거예요. 예수가 영적 구원의 이념을 세워 놓고 지금까지 지상에서 섭리해 나오는 애통하고 원통스러운 사실이…. `주여, 구해 주시옵소서. 이 억울한 원수를 갚아 주시옵소서' 하면서 피 흘리는 자리에서도 사탄이 붙들고 있어요. 죽기 전까지 붙들고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피 흘리고 난 후에야 하늘이 채 가는 거예요. `이 대가를 치러라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기독교 역사를 보면, 대부분 순교의 피를 통하여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 가지고 세워 나온 거예요.

더우기 오늘날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우리 통일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세계적인 이념이요 천주적인 이념을 갖고 나오지만서도, 천주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더라도, 오늘날 이 책임을 지고 이 길을 가야 할 인간들이 백 번 죽고 천 번 죽더라도 하늘편에서는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이거예요. 개인적인 핍박, 개인적인 환난이 오려면 와라 이거예요. 가정적인 핍박, 가정적인 환난이 오려면 와라 이거예요.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핍박과 환난이 오려면 오라 이거예요. 이 길에서 사탄이가 나를 참소해서 따라올 수 있는 조건을 남겨 가지고는 거기에서 가지 못하고 돌고비를 도는 거예요. 돌고비를 세 고비만 돌다가 못 넘어가면 깨져 나가는 거예요. 복귀의 길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가 얼마나 슬펐겠나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