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집: 역사의 주역 1969년 10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9 Search Speeches

외롭게 태어나 처량하게 자란 예수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요셉이 나타났다는 말, 성경에 있습니까? 있는지 없는 찾아 보라구요. 또 광야에 나갈 때도 부모 형제들이 찾아갔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아버지란 말이 나오던가요? 태어날 때부터 외롭게 태어난 예수는 처량게 컸다는 것입니다.

어린 예수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요셉에게 아빠라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요셉이 좋아했겠습니까? 아마도 가슴이 섬뜩 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요셉의 눈에는 사랑과 정 대신 질투와 분노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하지요? 「예」 그러니 예수는 요셉에게서 그런 것을 느끼면서 어머니 무릎에 앉으려고만 해도 요셉의 눈치를 봐야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가슴을 헤치고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어머니가 먹여 주는 밥도 제대로 받아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요셉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가까이에 갈 수도, 아버지의 무릎에 가 앉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어린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흘 만에 다시 찾는 대목이 있습니다(눅 2:4∼46). 요셉이나 마리아가 예수가 떨어진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루가 지난 다음에 예수를 찾으려 했겠습니까? 그 배후에는 예수 때문에 불쾌한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데리고 갔다가 떼어놓고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또 떼어놓고 왔다 하더라도 그 하루 동안 예수 생각을 안 했겠어요? 예루살렘에 갈 때는 졸졸 뒤따라 갔는데, 올 때 예수가 없어진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마리아는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았지만 요셉 때문에 예수를 찾아 데리고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면서도 요셉이 가자고 했을 때 마리아는 예수를 데리고 가자고 부탁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고충을 안고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도 길을 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냥 이대로 집에 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소문이 나 있는데 영락없이 이상한 소문과 함께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길 것 같거든요? 이러한 생각이 드니 안 되겠기에 다시 예수를 데리러 갔던 것입니다.

성전에 있던 예수가 그들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을 것입니까?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는 거기에 남아서 다른 부모들이 자식을 품고 왔다가 품고 돌아가고, 손에 손을 잡고 다녀가는 모습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모는 과거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렇게 나를 고아처럼 버리고 가는구나' 하며 부모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흘을 지낸 뒤 요셉과 마리아가 와서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했을 때 예수는 어땠겠습니까? 성경에는 좋게 예수가 지식이 많아서 제사장, 서기관들과 성경토론을 했다고 써 놓았지만 예수가 좋아서 그거 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불쌍한 예수의 모습인 것입니다. 부모가 책임 못한 것입니다. 하룻길을 갔다가 돌아와서야 예수를 찾을 정도였으니 예수가 후에 홀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그때 반박의 표현을 했습니다. `내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말 처음 듣지요? 그거 근사한 말입니다. 책임 못한 부모에 대한 반박의 성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예수는 길을 떠나 갈릴리의 가나 잔치 집에서도 마리아를 모른 체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길을 떠난 것은 마리아와 요셉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잘 받들었더라면 예수님에게 공생애노정을 필요없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에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선전하고 전도해서 타락한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졌습니까? 가정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어 나가면 가만히 있어도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예수가 길을 떠나 3년 공생애노정을 걸어야 했던 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