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국가와 우리의 사명 1971년 10월 09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30 Search Speeches

우리의 환경은 과- 행복의 터전인가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여러분이 자고 깨고 하는 그 환경과 여러분이 대하고 있는 심정의 대상권을 바라볼 때, 과연 여러분이 지니고 있고 여러분의 울타리처럼 보이는 그것이 과연 여러분을 보장시켜 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고 스스로 자인할 수 있는 그런 소망의 상대적 여건들이냐, 또 현재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과연 내일의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되겠느냐를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습관성을 두고 볼 때는 그런 것 같고, 혹은 오늘날의 어떠한 관계와 인연을 통해서는 그런 것 같지만, 그 내용을 헤쳐 가지고 분석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슬픈 운명을 갖고 태어난 후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인간이 있는 자리가 진정한 행복의 길이 못 된다는 것과 행복이 결실된 자리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운 것이 행복의 요인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도리어 내 자체가 가까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면, 그것이 내가 남겨야 할 것이요 내가 지녀야 할 것이라면 좋겠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닐 수 있는 것이 못 되고 남길 수 있는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니고 남길 수 있어야 되는데, 내가 오늘의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을 가릴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면, 그 환경과 싸워야 합니다. 환경과 싸울 길이 있다면, 내가 지금 가진 환경을 넘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갖추어진 환경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도 역시 불쌍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인간 조상이 타락했다는 것을 공인하는 자리에서 볼 때, 타락의 동기도 우리가 원치 않은 것이요, 타락의 과정도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의 결과도 우리가 상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어나고 보니 이미 그러한 인연의 세계였고, 태어나고 보니 이미 죽은 존재였고, 태어나고 보니 이미 결과의 세계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 포위된 권(圈)을 두고 보니 세계권이 있고, 국가권이 있고, 민족권이 있고, 종족권이 있고, 가정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권 가운데에는 내가 피살을 이어받은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으며, 내가 피살을 이어 놓은 처자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문제가 심각해요.

그러면 그것을 어디서부터 처리할 것이냐? 먼 곳에서부터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문제가 아니요, 국가가 문제가 아니요, 친척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가까운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이러한 역사성을 뚫어 보고 그 최고의 귀일점과 최고의 출발점, 그 키 포인트가 되는 곳이 자신과 제일 가까운 곳이라는 것과 그것을 살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절절히 느끼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너도 죽도 나도 죽고 다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 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남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을 바에는 어떤 자리에서 죽어야 할 것이냐?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는 데는 어떠한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이 타락권을 벗어난 자리에서, 그 동기의 인연을 탈피한 자리에서, 그 결과권을 타파한 자리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다면, 죽을 바에는 그것이라도 탈피한 자리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