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통일식구의 사명 1971년 01월 16일, 한국 부산교회 Page #46 Search Speeches

예수의 한과 이스라-의 한도 '어져야

요셉의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언제 예수를 사랑해 봤습니까?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추방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가로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의 개문을 위해서는 사랑 못받은 예수를 사랑할 수 있는 재현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통일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한 아저씨 아주머니가 언제 예수를 사랑해 봤습니까? 못했다는 것입니다. 형님 누나가 사랑해 봤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 사랑해 봤습니까? 동생들이 사랑해 봤어요?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의 동생들은 형님 예수를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중심삼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철석같이 뭉쳐 나라의 칼이나 어떠한 권세의 힘을 가지고도 깨뜨릴래야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심정적인 식구의 인연으로 결속된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정말로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만 하나님의 한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꾸며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 대신 입장에서 사랑하려면 깊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천년 동안 몰리고 쫓기던 민족, 비운에 처해 근근히 세계에 남아진 민족이 된 것은 천륜을 어겨 나오던 로마의 수하에서 그 절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천륜을 알지 못하고 개인의 사정과 가정환경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비판하고 천륜을 배반했던 요셉 일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의붓 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사랑하고 싶었고, 또 어머니인 마리아를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먼저 사랑하고 싶었고, 또 형제를 누구 보다도 안고 싶었고, 격식을 갖추고 살지 못하더라도 같이 살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그렇게도 수고해서 남겨 놓은 최후의 한분이기 때문에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는 의인으로서 뼛골이 녹아 지고, 힘줄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피살을 다 쏟더라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사랑하지 못했던 사랑을 다시 찾아서 이제까지 사랑하지 못한 동생들을 사랑하고, 생명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족들을 붙들고 끝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과 종족과 나라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통일가에서 재현시켜 가지고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한을 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한을 풀자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대교가 믿고 이스라엘 나라가 믿고 요셉 족속이 믿었더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자밥이 되었겠습니까? 믿었더라면 세례 요한도 어쩔 수 없이 에수님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는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국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마 11:7-9)"라고 세례 요한의 무리들을 책망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생각하니 자기는 명분이 있는 하늘의 선지자로서 가는 입장인데 헤롯왕, 즉 사탄한테 모가지가 걸려 가지고 감옥에 갇혀 있는 따라지 팔자가 되었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준 적이 있는, 지금까지 나쁘게 소문났던 사생아 같은 자기의 동생 뻘 되는 예수에 대해 별의별 의심을 다 품었고 내가 형님인데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그가 어떻다는 소문을 듣고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을 보내 가지고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 이 괴물단지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6)"하시면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식한 베드로가, 수제자가 될 수 있는 세례 요한의 권한을 몽땅 빼앗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을 일컬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천국은 시시껄렁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세례 요한이 책임을 다했더라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사도가 되고 70문도 120문도가 다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박사와 목사 그리고 수많은 사도들이 있었어도 여기에는 꿈에도 생각 못한 이러한 역사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나왔으니 이런 내용을 다 밝히는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