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하늘을 위로하자 1968년 04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8 Search Speeches

하나님께 말할 수 -" 슬""이 된 예수님의 죽음

그러면 그 아들이 인간들을 다시 낳아 주기 위한 개척역사를 해야 하는데, 그 아들이 나올 때까지 누가 섭리하셨는가? 즉 예수님 오시기 전 4천년 동안은 누가 했는가? 하나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이 아들을 찾아 내기 위해 하나님이 얼마나 서러움을 당했겠나 생각해 보세요. 원수의 나라에서의 충신, 효자, 열녀보다도 더한 하나님편의 사람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낳아서 기르는 것이 아니고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하나님편을 만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고통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기막힌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새끼들을 빼앗아다가 당신의 사정과 심정을 이해하게 해 가지고 그런 일을 하시기가 쉬웠겠습니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4천년의 기간도 하나님에게는 오히려 빠른 것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올 때까지, 즉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 땅 위에 몇천만 번 왕래하셨겠는가? 몇번이나 왕래했을 것 같아요? 야곱이 하란에 가기 전, 아브라함이 제물 드리기 전, 노아 홍수 심판 전 이렇게 자꾸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 가정의 가인 아벨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찾아와 `아벨아, 천륜의 법도가 거꾸로 되었으니 부디부디 가인을 자연굴복시켜서 다시 바로잡아다오' 하면서 기도하셨겠습니까, 안 하셨겠습니까? 가인을 굴복시키길 마음으로 얼마나 기도하셨을까요? 하나님이 간절히 바랐던 그 마음은 오늘날 타락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겠다고 기도하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고대했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미흡한 아벨에게 모든 것을 걸고 바라보고 계시던 하나님의 간절한 모습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처럼 간절한 소망을 갖고 왔던 그분이 사탄에게 쫓겨가야 했다니 기막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좋다고 하며 춤을 추게 되고, 하나님은 눈물을 머금고 왔던 길을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사연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에게는 되돌아가야 하는 비참한 날들이 거듭됐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또한 바라셨던 터전의 중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계 역사와 수많은 민족을 걸어 놓고 한 중심을 찾아 내려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국이 앞으로 하나님의 뜻 앞에서 사랑하는 나라가 되고,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제3이스라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원래 서구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중동 지역에만 머물러야 할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구라파를 돌아서 한국에 전파된 것이 2백여 년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겨우 2백여 년 전부터 찾아 오시기 시작했겠습니까? 한국이 그런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은 서쪽에서부터 역사를 발전시켜 나오면서 동쪽에서도 남모르는 가운데 역사적 인연과 사연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민족의 배후에서 안팎을 감싸 나가면서 한 때의 초점에 맞추기 위해 시련 고통을 개의치 않고 수습해 나왔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배후의 노고가 얼마나 크신가를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1,600년 만에 아벨 대신 노아를 세웠습니다. 그 다음엔 아브라함을 세웠고, 모세를 세웠고, 세례 요한을 세웠고, 예수님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번번히 실패한 입장에 선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람 같으면 체면이 있기에 얼굴을 들고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하면서 다 내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여러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수모와 멸시,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과 비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피흘리고 죽기가 일쑤였으니, 매일같이 장사를 치러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원군 때,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이 학살 당했습니까? 어느 나라든지 기독교가 그 나라에 들어갈 때는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정성을 모아 길러 놓은 하나님편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쓰러져 가는 참패의 서러움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합니다.

이처럼 편안한 날이 없는 하나님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영광 가운데 있는 하나님라고 하니 성경 말씀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탄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탄식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탄식하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 어찌하여 탄식하는 것이 당연한 하나님이 되었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