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전통적 생애 1971년 05월 01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67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체

자, 이제 복귀역사를 더듬어 아담 가정에서부터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담 가정의 아담 해와는 두 세계의 모체입니다. 두 세계의 모체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갈라 가지고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싸웠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인이 아벨을 죽였지요? 그 후 가인은 두려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때려 죽일까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를 죽이는 자에게는 7배의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벨을 죽인 가인을 당장에 죽여 버리든가, 무슨 처벌을 해야할 텐데, 도리어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 7배나 뭘 주겠다고요? 복을 주겠다고 했습니까, 화를 주겠다고 했습니까? 화를 주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 죽인 살인자의 편입니까, 죽인 것을 모르겠다고 하는 편입니까? 이것을 묻는 사람이 지금까지 없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런 역설적인 발언을 하셨겠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가인을 죽이려고 했다면 세상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세상의 원수가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과 세상이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는 원수가 될 수 있어도 부자간에는 원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원수가 되면 복귀의 길이 끊어지게 되고, 부자관계도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살육한 사실은 나쁘지만, 천도를 남겨야 할 하나님은 가인을 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를 때려 죽이게 되면 천도가 끊겨 나가기 때문에 복귀고 무엇이고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도를 남겨야 할 하나님은 뜻을 생각하고 반대적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전부 반대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겠습니까? 현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미래 때문에 그런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를 보세요.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을 때 그의 친구나 동네 사람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아버지와 아내, 아들딸, 며느리들이 그를 좋아한 줄 알아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시아버지라는 사람이 매일 까뀌 보따리를 짊어지고 새벽같이 나가면서 며느리에게 '아가 아가, 밥 좀 일찍 해라'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분명히 그랬을 거예요. 마누라 보고도 '여보 마누라, 이 영감이 일하러 나가는데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가서 올라가다 말고 내려와서야 되겠나. 좀 빨리 해주게'라고 간절히 말을 했을 것입니다.

120년이라는 말할 수 없이 기나긴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놀다가 한 10년 후에 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치 않은 것입니다. 명령받은 그날부터 끊임없는 정성을 들이고, 일어날 때도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일을 마칠 때도 누구보다 늦게 마치고, 잠은 누구보다도 적게 자고, 정성은 누구보다 많이 들이기를 하늘은 원했을 것 아닙니까?

'노아야, 너는 이 시대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러니 너는 천추만대 역사 끝까지 남길 전통을 세워야 하고 복귀섭리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너는 그런 대표자이기 때문에 너는 나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된다'라고 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하늘의 사연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역사적 환경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노아 할아버지는 역사를 넘고 넘어 복귀섭리의 노정에 전통을 남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의 전통을 따라가야 할 후손들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보면 비참하고 불쌍하지만 뜻을 사랑하고 계획했던 복귀의 천국을 잃어버릴 수 없는 하나님은 그를 동역자로 남기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현실세계와 더불어 짝할 수 없고, 현실적인 환경에서 배척받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인류역사노정에 믿음의 전통을 세우는 데는 자그마치 120년 동안 수난을 당하는 것이 필연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노아 할아버지에게 시대의 걸인이 되고, 시대의 추방자가 되고, 시대로부터 몰림받는 환경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즉, 그 시대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소생되어 오는 미래의 뜻의 세계와 더불어 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노아를 그렇게 무자비한 입장으로 내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 자신도 그 뜻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딸을 무자비한 입장으로 내몰지 않을 수 없었고, 자기 부인을 무자비한 자리로 나가도록 권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아내와 그 아들딸이 그러한 노아의 권고를 고마운 권고로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행하는 것이 응당히 해야 할 책임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120년동안 노아를 협조했던들, 노아의 가정에 그러한 불상사의 끝날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평하고 비판함으로 말미암아, 120년간 정성들여 방주를 지은 노아 할아버지는 내적인 면에서 미래의 전통을 세우기는 했지만 실체적인 승리의 터전을 갖추지 못하고 실패한 운명권내로 흘러가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그 시대를 위해 산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민족 가운데서도 보다 높은 중심민족으로, 길이길이 남아질 수 있는 민족으로 세우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미래의 역사앞에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전통을 남기기 위해 노아로 하여금 그 시대에 부정받는 생활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와 더불어 살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그런 놀음을 시켰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