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나의 이름이 무엇이냐 1960년 02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6 Search Speeches

예수의 이름과 나

성경 66권의 말씀은 하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서 하신 말씀이뇨. 참다운 하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참다운 하나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 허락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따라 나가고 말씀을 지켜 나가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뇨. 우리도 예수님처럼 길이요 진리요 생명체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어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예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체 예수보다도 그의 이름을 먼저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예수 이름으로 된 인(印)을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아니 거칠래야 아니 거칠 수 없는 필연적인 운명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반면 이 세상에는 사탄으로 말미암은 이름이 있습니다. 마귀를 사탄이라고 하고 사탄을 악이라고 합니다. 악에는 시기, 질투 등 여러가지 속성(屬性)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악의 속성이 사탄의 대명사(代名詞)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과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지게 되느냐 사탄과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지게 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하였을망정 하늘의 복귀섭리의 혜택을 받아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복귀하는 데는 무엇을 복귀하는 것인고. 잃어버린 본연의 아담을 회복하는 것이고 잃어버린 본연의 해와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6천년 기나긴 역사는 무엇이뇨.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잃어버린 인류의 참조상인 아담과 해와를 다시 찾는 역사입니다. 인류의 참다운 조상이 될 수 있는 아담과 해와를 찾아세우는 것이 어린양 잔치요, 그것이 이루어지는 때가 재림이상시대입니다. 6천년 역사는 타락하여 쓰러진 아담 해와를 다시 세워나오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아담 말고, 쓰러진 아담 말고, 사탄이 침범하던 아담 말고, 6천년전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받던 그 아담 해와의 입장, 죽지 않고 살아 남아야 할 아담 해와와 같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를 붙들고 나오는 데는 하나님의 6천년 역사가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붙들고 끌고 나오려는 이런 남자는, 창세된 그날부터 타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어느 한 때에도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어 내려와서 살아남은, 아담형을 대신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죽은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그 형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형(型)을 거치고, 더 크게는 가정적으로 그런 형을 거친 다음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범위를 확대하여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양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사망의 세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은사의 세계를 넘어가야 하고, 심판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권을 찾아 들어가야 할 우리들은 어떠한 입장에 서 있어야 되느냐?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아담 해와의 입장에 서야 되는것입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6천년의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 오면서 하늘의 서글픔의 대상이 되어 지금까지 아니 끌려 나올래야 아니 끌려 나올 수 없는 입장에서 하늘의 섭리 앞에 끌려 나왔습니다. 여러분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여러분 자신에게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 아브라함 등 역대 선지의 피어린 혈통이 인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민족을 붙들고 나오는 하나님의 피어린 심정이 인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를 더듬어 보아서 역사노정의 저끄러진 모든 것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새로운 부활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권한을 부여받아야 되는데, 그 새로운 이념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뇨.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소망스런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타락한 그날부터는 절망과 탄식과 한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뇨.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바라보셨던 선한 아담 해와를 그리워해야 되겠고, 내 몸으로는 하나님의 슬픔을 느끼고 절망의 자리에 서서 허덕이시던 하나님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