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수난과 생의 보람 1971년 04월 18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72 Search Speeches

수난 길을 간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 잘 알아

이런 사실을 두고 보면 고생한 사람일수록 그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고생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 고생한 뜻에 대해서 보다 낫게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 뜻과 이념을 중심삼고 자기의 생명을 걸어 놓고 수난길을 걸어간 사람일수록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들이 합하여 민족이 되었다면 그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가치를 높고 넓고 깊게 알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을 따라가는 길에 있어서, 혹은 천운의 도리를 실천해 가는 길에 있어서 행복이 좋으냐 환난이 좋으냐 할 때, 행복보다도 환난이 좋다는 것입니다. 환난은 우리의 후손들이 망하지 않도록 방비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희생과 시련의 터전 위에서 전통을 상속받아 더욱 발전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어려운 길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반을 닦지 못한 민족이 영광스런 한 날을 맞이했다가 거기에 다시 어려움이 몰아치게 될 때는 그들은 좌절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가중된 탕감노정을 통하여 발전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복귀하면 가정복귀가 남아 있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종족복귀가 남아 있는 것이요,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라는 몇 배, 몇백 배, 몇천만 배의 가중된 수난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 길을 갈 수 있고 그 뜻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 그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싫다고 하는 사람은 그 이상의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을 걸고 하늘의 복을 받기를 바라면 생명 이상의 복을 받을 수 있지만, 생명 이하에서 복을 받기를 원하면 생명 이하의 복밖에 받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망권내에 있는 세계 인류를 생명권내로 부활 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을 지구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 이상의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이상의 가치를 알고, 당당코 이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이것을 당당코 세우기 위하여 무난히 돌파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진 하나의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이 수난길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생명을 중심삼고 무엇보다도 강하고 무엇보다도 두텁고 무엇보다도 강직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그런 길을 갖추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탕감복귀노정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주요 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인들은 이 사상을 중심삼고 가자는 것입니다. 옆을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를 비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고 또 가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주체가 말하기 전에 자기들이 서로 권고하고 자극시켜 가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명령을 하는 사람이 할아버지일지라도, 홍안의 미소를 자랑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이라 하더라도 그의 말을 듣자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백발이 휘날리는 노인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그 노인에게서 우러난 한마디의 결의가 젊은이를 심판할 수 있는 기운이 있다면, 하나님은 젊은이를 저버리고 늙어 쪼그라진 할아버지를 중심삼고 하늘 역사의 발전 동기를 엮어 나가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