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집: 참을 찾아가는 길 1964년 03월 26일, 한국 전주교회 Page #310 Search Speeches

사람은 본래가 선한 존재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천리를 풀고 보면, 과연 이 창조주, 천지를 창조하던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과연 내 하나님이예요. 잘난 사람도 내 하나님이요, 못난 사람도 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왜?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일대를 보고 있었는데, 잘난 사람은 몇 대를 본단 말이예요, 몇세기. 그렇잖아요? 혹은 예언자니 선각자니 하는 사람은 수천 년을 내다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런 사람은 수천 년을 내다보니 생활은 일대를 거쳐 살고 있지만 그 생애─생활과 생애는 달라요. 생애라는 것은 일생이요, 생활은 하루예요─는 몇천 년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하나님도 지금까지 수천 년 역사와 더불어 같이 살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하늘을 따라가는 사람도 역시 그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 전부 다 평등해요. 마찬가지예요.

당장에 그저 한끼 먹고 좋아하고 하루 살고 좋아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아요? 거리를 두고 점점점점 좋아질 수 있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 그렇게 들어선 백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백성은 그 가운데 들어섰지만 그렇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사니 평면적으로 바라보면, 하루하루를 생활해 보면 거지꼴 같지요. `아이구, 난 죽는구나' 하며 야단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크게 보면 평등한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도 만일에 불평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면 자기가 선한 마음을 갖지 모르거니와 아무리 억울한 자리에 있더라도 선한 마음을 갖고 억울함을 당하게 될 때는 절대 하늘 앞에 불평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분은 어디까지나 내 편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사람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사람은 본래 선한 거예요. 본질이, 본성품이. 아무리사람이 살인을 하더라도, 환경에 몰려 칼을 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일이 있더라도 그 본마음은 명령한다는 거예요. 한두 번만이 아니예요. 수십 번 일어나는 발작 발작마다 명령한다 이거예요.

그런 것은 안 해봤으니까 다 모르겠지만서도 선생님은 그런 살인 강도들하고 감옥살이도 많이 해봤어요. 그들과 생활을 해보면 그들도 다 마찬가지예요. 별반 차이가 없어요. 이렇게 명령을 받고 있지만 명령을 받고도 그 가치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 명령은 누구와 더불어 하고 있느냐? 그 양심이 명령한다고 해서 자기가 명령하는 게 아니고 하늘땅, 이 온 우주의 세력이 명령한다는 것만 알았던들 죽더라도 그건 못 한다는 거예요. 만일 우주의 이 큰 공의의 법도에 따라 가지고 명령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어길 때는 그 보응이 어떻다는 것만 딱 알게 된다면 악한 일을 하라 해도 칼을 들고 가라 해도 못 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정신만 갖고, 하늘땅이 있어 가지고 공의의 법도로서 치리하는 이 우주의 주인공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만 알게 될 때는 `악한 사람 돼라 돼라' 하고 제사를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빤히 손해가 나겠는데 해요? 그 사람들 눈들 보지요. 깜박깜박하면서….

내가 금년에 서울에 가서 명동 거리를 척 나가 가지고 한참 멍해서 바라볼 때가 있었어요. 여자들 뭔가, 여기에 바르는 것? 발라 놓고, 뭐 꺼슬어 놓고, 젖혀 놓고, 앞가슴을 떡 젖혀 놓고는 궁둥이 춤을 추면서, 잘들 논다 이거예요. 또 사내 녀석들을 보게 되면, 여기에 기름을 바르고 뭐 양복을 입고 천하에 내가 제일이다 하며….

`야, 이놈들아! 네 배통과 네 눈통엔 뭐가 들어가 있니?' 하는 생각을 했어요. 눈을 가만히 보면, 어떠한 녀석이라도 땡전 한잎이라도 손해보겠다는 눈을 가지고 다니는 녀석은 하나도 없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전부 다 `이익날 구멍이 어디냐? 어떻게 해야 돈을 좀 모으고 어떻게 해야 오늘 수지 맞추냐?' 하고 있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뭐?

그렇지만 세상만사는 모순으로써 엉클어져 있구나, 그걸 탄식 안 하려면 말이지요…. 어찌하여 눈은 그런 이익에 취해서 '이익 이익'하느냐? 기도중에 그런 기도가 없을 거예요, 자기 스스로. `돈아 돈아' 하겠지만 그놈의 돈이 어디로 갔는고? 가던 길에 있어서 꼬꾸라지는 수도 있고 뒤집어지는 수도 있고 생각과는 천양지판으로 반대를 받아서 결국에 가서는 '아이고, 난 죽는다'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죽는다' 하는 사람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말이지요, 전부 다 욕심부리고 다니다가 `나는 죽는다' 하는 거예요. 그렇게 욕심부리다가 죽는 녀석은 죽어도 동네에서 제일 유난을 떨어요. 그렇게 보면 그게 모순 중의 모순 같은데, 그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이익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느냐? 이것을 전부 다 자기들은 모르지만, 자기들은 모르고 춤추고 다녔지만 결국은 이런 천륜의 대도에 따라 가지고 정의의 판가리싸움 앞에 부결당하게 될 때는 꼬꾸라지고 통곡하고 `아이고, 난 죽는다' 하는 거예요. 안 그럴 수 있어요? 그렇게 돼 있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