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집: 참된 식구의 가치 1971년 08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4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제시하시" 참의 기준

오늘날 사랑을 주장하는 기독교나, 혹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표한 섭리노정에 심판이라는 명사가 왜 있느냐? 이것은 원수를 원수로서 처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의 주체인 사탄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인간들이 오랜 역사시대를 통해 잘못한 것도 용서해 주시려는 하나님이 사탄만은 용서하지 못하느냐? 사탄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수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태어났어야 할 인간이 원수의 핏줄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은 이 세상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과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환경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 태어 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내 사람이라고 하면서 몽땅 품고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단계를 가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가려야 되고, 내적으로 가려야 되고, 몸적으로 가려야 되고, 마음적으로 가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몇 단계를 가리고 난 후에 비로소 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역사과정에 난 참의 사람이라고 해서 거기에서 그냥 몽땅 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리는 데에는 어떻게 가려야 되느냐? 깨끗이 가려야 됩니다. 인간 타락의 슬픔을 느낀 하나님의 한은 인간이 백만한 가치의 내용을 중심삼고 타락했다면 백만한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가려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백 이상의 내용을 가지고 타락한 인간을 가려 버릴 수 있는 이런 하나의 기점을 마련하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타락으로 인한 슬픔과 원한을 풀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더 좋아야 돼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성경에는 타락한 우리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양자밖에 못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양자라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인간이라는 거예요.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내용이 달라요. 그러면 이 양자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양아버지와 양어머니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만약에 양부모의 혈육이 있으면 그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양자가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보통 사람과 같이, 보통 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모를 위해서, 부모 대신 피를 흘릴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책임지고 가면서 거기에 무슨 조건을 내세워 가지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지 않으며 어떤 조건이라도 극복하고 희생하고 순응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선다면 그 양자를 맞은 양부모는 그에게 소망을 더 가질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모든 것이 그르쳐질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인간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진짜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나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위인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4대 성인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진짜 하나님이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동양에서는 유교사상을 심어 준 공자라고 할 것입니다. 또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라고 할 것이고 회회교에서는 마호메트라고 할 것입니다. 또 기독교에서는 예수라고 하겠지요.

이들을 4대 성인이라고 하는데, 이 4대 성인 가운데서 누가 표준이냐?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누가 제일이냐? 누가 참이냐? 기준이 될 수 있는 참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참이 못 된다면 참의 기준에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성인이 누구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가려 놓아야 참의 기준을 중심삼고 역사의 방향도 설정될 수 있는 것이요, 역사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거기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우리 개인의 인생관도 설정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까지의 인간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찾고 있는 참의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될 수 있기 위해서는 순탄한 노정을 거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이 땅 위에서는 순탄한 과정에서 참의 결과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의 인격체로 태어나는 데는 역사시대에서 순탄한 자정을 거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환경 가운데 있는 모든 악과의 싸움을 극복하고 그 투쟁한 실적의 기반 위에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새로운 승리의 터전 위에서 참의 한 실체, 세계를 대표한 참의 주인공이 나올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참이라고 보시는, 우리 인간 앞에 참이라고 제시하시는 그 제일 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물질적인 것도 아닙니다. 권위적인 것도 아니요, 인간이 가진 어떤 재질적 조건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이 됐다. 이제부터 참사람이 된다. 참사람의 고개를 넘는다'고 제시할 수 있는 참의 기준의 내용이 무엇일 것이냐? 잘난 인격도 아닙니다. 지식도 아닙니다. 효도 아닙니다. 충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게 뭐냐?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기준이 뭐냐? 참이 된다, 참사람이 된다 할 때에 넘어야 할 최고의 경계선이 무엇이냐? 그것은 민족도 아닙니다. 핏줄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핏줄이 다릅니다. 악한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사탄의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혈통을 재차 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결정될 수 있는 하나님이 제시한 최후의 선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 역사시대에 있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보세요. 그러한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소망의 역사가 탄생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소망의 역사가 탄생되지 않으면 소망의 세계는 현현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