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집: 승리적 제물 1971년 08월 30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290 Search Speeches

기독교가 죽음의 길을 ""어 오게 된 이유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와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물을 바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전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하고 제2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그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제물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바쳐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 말미암아 원칙 기준에 서게 되는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의 때를 향해 출발할 수 있는 거점이 이 지상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재림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동원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원되고 예수가 동원되고 성신이 동원되어야 됩니다. 전체가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이 동원되더라도 천사와 아들도 동원했던 것입니다. 직접 동원해 가지고 이 길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들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아들을 대신하여 제사장의 자리에서 소망하는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사탄과 대결해 가지고 승리의 제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망의 때를 맞이해 가지고 한때에 승리의 판도가 성사된다는 기준을 세워 놓은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오는데, 어떻게 제물을 드려야 하느냐? 하나님을 믿고 예수와 성신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되고, 예수와 성신은 인류의 부모인데, 땅에서 그 부모를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즉 땅에서 부모를 모시고, 그 부모를 모시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자리를 하나님이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를 대신해 줌으로 말미암아 부모는 희생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기반은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적인 기반만을 남긴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체의 내적 중심의 자리에 선 것은 예수가 내적인 기준을 차지하지 못해서 선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오는 모습을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인간들은 하나님을 어디까지나 영적인 기준에서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기준으로만 모셔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 삼위신을 모셔 가지고는 완전복귀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육적 기준을 갖춘 부모를 모셔야 되고, 이 부모가 하나되어서 영적인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고 한꺼번에 전부 다 영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무엇을 해 나왔느냐? 영적인 세계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하나님, 영적인 부모를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해 나온 것은 무엇이냐? 그냥 그대로 믿고 따라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냐? 물론 믿고 따라 나가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 자신들이 믿는 자리보다 더 좋은 길로는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올라가고 싶다고 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올라가려면 제물의 자리에 나갔다가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예수가 내적인 입장에서 나갔다가 들어와 가지고 영적인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예수가 간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가 있는 자리는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나쁠 수 있는 자리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데는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신앙노정은 희생의 피를 뿌리는 비참한 순교의 역사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만 붙들고 '우리만 숨어서 믿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뭐하러 나가서 핍박을 받고 그러느냐? 그럴 필요가 있느냐? 그저 혼자 마음속으로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반드시 나갔다가 들어와야 됩니다. 나가는 데는 유대교와 같은 교회를 위해서 나가서 교회 터전을 닦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나라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죽음의 길을 더듬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나가는 그 자체가 제물의 자리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나갔다 들어 오게 될 때 비로소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은 생명으로 때우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