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우리의 자랑 1968년 07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8 Search Speeches

국가적인 기준을 가져야 할 "시아

개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구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결정됐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가정을 구원할 수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개인만 구원 받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가정을 또 구원해야 됩니다. 가정의 구원이 이루어지면 종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즉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구원해 줄 메시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예수님은 무엇을 해 나왔느냐? 개인적인 메시아의 입장에서만 머물렀지 가정적인 메시아의 자리에는 못나왔습니다. 가정적인 메시아가 되려면 예수님은 가정적인 메시아로서 만민의 표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시며 가정적인 구주의 기준을 결정하러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요 바램이었으며, 그것을 바라보며 나온 것이 2천년 기독교사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시시한 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륜의 법도도 가정적인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보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으로 국가적인 메시아의 권한을 가지고 만민을 통치하는 실권을 행사하여야 할 입장에서 땅 위에 그 나라를 건국하여 만 우주를 호령할 수 있는 터전을 갖추어 출발해야 할 것이 국가적인 메시아의 기준이었습니다. 이 기준을 갖는 것이 곧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하여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 이후 2천년이 지나도록 주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리고객으로 깨깨 고생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노아를 세우고,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을 세워서 4천년 동안 귀중한 터전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민족적인 메시아를 중심삼고 국가적인 터전을, 국가적인 메시아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터전을 마련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몰리고 쫓기어 개인의 터전마저도 갖지 못하는 서러운 입장에 섰다는 거예요. 이렇게 예수님을 개인의 터전에서도 자유로운 구주의 권한을 가질 수 없는 슬픔의 자리로 떨어뜨린 장본인인 이스라엘 민족은 수천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에는 히틀러에게 600만이나 학살을 당했지만, 그들의 죄값에 비하면 적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