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본을 세워야 할 지상시대 1971년 10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4 Search Speeches

성경의 가르침

자, 이런 것을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는 예수님이 왔다면, 그 예수님이 가라사대 `살고자 하는 자는 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죽느니라' 이러겠어요? 이렇게 교육하겠어요? 여러분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얘기하겠어요? 여러분이 이런 처지라면, 뜻이고 무엇이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어떤 교육의 표준을 세워야 되겠어요? `살고자 하는 사람은 사느니라' 그렇게 교육하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여러분들이라 하더라도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느니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네 집안식구가 제일 가까우니라'가 아니라 `네 집안식구가 원수니라' 하고, `네가 입고 좋아하는 것이 제일 너를 깝대기 벗기고 있는 것이다'라고 교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 이제까지의 것은 다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다 잊어버려도 삼팔선이 있다는 것만은 잊어버리지 마세요. 알겠어요? 사망의 지옥인 삼팔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사망권내에 있는 이 세계의 것을 차지하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색다른 나라에 입국할 수 있는 합격자를 만들고 국민을 만들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그건 자동적으로 된다는 거예요.

그 가르침이 고마운 가르침이예요. 고맙지 않은 가르침이예요?「고마운…」고마운 가르침이예요? 그래,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했어요? 여기 서 있는 사람도, `성경이 이게 뭐야, 이게 이게. 이게 무슨 수작이야? 예수는 민족 반역자로 몰리고 쫓기다가 죽은 게 아니냐? 가정 파탄분자요, 사회 소란분자요, 국가 광란분자로서 자기 종족, 자기 민족이 십자가에 탕탕 못박아 죽인 패자의 대표자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문화권을 형성하게 됐느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가 죽어 가지고 무슨 뭐 홍길동 같은 놀음을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예수를 죽이는 자리에 내세운 데에는 그 배후에서 절대적인 힘이 개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결과를 타진해 볼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런 분이 성인이 되었느냐? 예수가 죽을 때 성인이라는 패말을 박고 죽었어요? `유대인의 왕이다, 민족의 반역자다'라고 해 가지고 공산당식으로 말하면 반동분자로 몰려 죽은 것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죽었지만 죽은 경계선이 어디냐, 즉 어떠한 자리에서 죽었느냐 하면,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늘의 절개와 충절을 대표해 가지고 인간으로서 죽어야 할 타당하고 마땅한 자리에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필시 그를 들어 그가 죽은 가치를 전통으로 남기고 그의 사상을 사상적 기조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그 나라의 국민성과 전통이 서기 때문에, 그런 죽음길을 따라가 가지고 하늘 나라의 새로운 출발의 기원이 마련되기 때문에, 그 터전이 남아진 것이 오늘날 기독교 문화권입니다. 당연한 말이예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실감이 날 겁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면, 그 자리는 삼팔선을 중심삼고 그 상대방과 교전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 사로잡히느냐 내가 그를 사로잡느냐, 악의 침범을 받느냐 선의 영향을 끼치느냐' 하는 그런 관점에서 만사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럽힘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심각한 자리입니다. 심각한 자리예요. 아주머니, 심각한 자리인 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