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집: 인생의 갈 길 1971년 01월 08일, 한국 춘천교회 Page #341 Search Speeches

불행했던 예수님의 어린 시절

천사의 말 때문에 할수없이 마리아를 데려다 놓았지만 `대관절 당신 뱃속의 애기는 누구의 애기야'라고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여기 남자들,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물어 보겠어요, 안 물어 보겠어요? 「물어 봅니다」 하나님이건 대왕님이건 덮어놓고 그거 누구 애기인지 알고 싶겠지요? 대관절 그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거예요.

요셉이 마리아를 사지에서 구해낸 구주의 입장에서 다정스럽게 물어 보았을 때 마리아가 `여보 내 뱃속의 아기는 성신으로 잉태했소이다'(웃음)라고 한다고 해서 요셉이 그 말을 믿었겠어요? 요셉은 `무슨 수작이야. 성신으로 잉태하는 법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이것 봐라, 내가 너를 사지에서 구해준 은인인데 발뺌하기 위해서 그런 수작을 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싸움도 했을 것입니다. 남자의 성격에 한번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 하면서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가만히 다가가서 속삭속삭 물어보고 하는 것이 그 동네방네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잔치도 안 하고 처녀를 데려다 놨으니, 첫날밤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서 구경하는 것과 같이 동네방네 총각 녀석들이 `저거 이상하다'하며 궁금해 가지고 엿듣는 별의별 판국이 다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통해서 동네방네 소문이 퍼지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사람들은 마리아가 밴 아이의 아버지가 요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동네방네에서 소근소근하니까 마리아의 신세가 어땠겠어요? 배가 점점 뚱뚱해질수록 밖에 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고 대낮에 오줌 누러도 못 나갔을 것입니다.(웃음) 고개를 내밀고 뻔뻔스럽게 돌아다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배가 점점 불러오면 불러올수록 `하나님이시여, 내가 이런 처지에서 아들이든 딸이든 어떻게 애기를 낳겠습니까? 동네방네에 발붙일 곳 없는 가냘픈 이 마리아의 신세를 아버지여 도우시옵소서'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될 수 있으면 이방에 가 가지고 흔적도 없이 살짝 애기를 낳아서 기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소문난 그 환경에서 애기를 낳을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그네 행로에 올랐다가 말구유에 예수님을 낳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자님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가고, 삼촌 아저씨는 어디 갔습니까. 형님 누나가 왜 없었겠습니까? 또 만삭이 된 배를 해 가지고 가는 마리아가 어찌하여 유사시에 방비할 수 있는 포대기 하나 준비하지 못하고 옷 한 벌 준비하지 못한 채로 갔겠습니까? 요셉이 기분 나빠할까봐 할 수 없이 달랑달랑 빈 몸으로 아이를 낳으러 갔던 것입니다. 강보가 보자기지요? 말구유에 보자기로 예수님을 싸 놓은 것이 기독교의 자랑입니까? 기가 막히게 억울하고 분통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달려가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알려야 될 것 아니예요? 거기에서 베들레헴까지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하루 저녁이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이 급보로 달려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온다 간다는 소식도 없이 애급으로 도망가야 할 처량한 신세였던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의붓자식으로 태어난 것으로 인하여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머니 무릎에 안길 때에도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하여 앉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의붓자식으로 자란 예수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와 진정한 사랑을 못 해봤고 아버지가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 갔고, 형님 누나 동생 엄마 아빠 친척은 다 어디에 갔습니까?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어디에 갔습니까? 자기 친척으로부터 몰림받는 예수가 유대교로부터도 몰림받지 않을 수 없으니 예수가 몰린 것은 모두 친척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친척이 예수님을 창조주같이 모셨으면 예수님은 그 친척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결혼을 하고, 그렇게 되면 일족들이 예수님의 열 배 되는 일을 해놓는 것이 됩니다. 예수가 베드로 야곱 요한과 같은 어부들을 찾아 나서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찾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맺혀 있는 이러한 모든 한을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는 예수의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손자같이 사랑해야 됩니다.(잠깐 녹음되어 있지 않음)